떠나는 자
출처 - <뉴스1>
2024년 하반기 장성 인사가 발표됐다. 채수근 상병 사건의 중심이었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12월 7일 전역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계환 사령관에게 대장을 약속했을 것이다.”
올봄 총선을 앞두고, 그가 해병대 4성 장군이 될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왔었다. 채수근 상병 사건이 정권을 위협하던 그때. 이종섭 前 국방부장관을 호주 대사로 보낼 정도로 다급했던 상황에서, 대통령이 내놓을 수 있었던 카드는 ‘자리’ 밖에 없었다.
“자본가는 돈으로 사람을 굴리고, 권력자는 자리로 사람을 굴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리’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이를 잘 활용했다. 당연히 김계환 사령관에게도 자리를 약속했을 것이란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해병대가 멈춰 섰다. 올봄, 그러니까 4월만 하더라도 김계환 사령관은 ‘결심’한 듯했다.
총선 직후 해병대 장병들에게 지휘서신을 보내,
말하지 못하는 고뇌
를 토로했고, 4월 말부터 예하 부대 방문 일정, 그러니까 지휘관의 마지막 고별방문 일정이 잡혔다. 누가 봐도 전역을 예상한 듯한 행보였으나, 이야기는 봄을 넘기지 못하고 급하게 틀어졌다.
“나는 이 자리를 지킨다.”
김계환 사령관은 유임됐고, 해병대는 그대로 멈춰 섰다.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그가 별 하나 더 달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만약 정국(政局)이 요동치지 않았다면,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를 넘어섰다면,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남는 자
지난 27일,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주일석 해병대사령관
출처 - (링크)
김계환 사령관의 후임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논의가 있었다. 아마, 이번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던 인사였을 것이다. 올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대장 승진자는 없었다. 즉,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가장 핫 했던 게 해병대 사령관 인사라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자리이며, 국민들이 가장 주목하는 자리가 바로 이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조금만 관심 있으면, 해병대 사령관 자리가 별 3개 중장 자리이며 그 자리에 김계환 중장이 앉아 있다는 걸 안다.
이 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채수근 상병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의 ‘판단’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누가 됐든지 간에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만큼 민감한 인사였다. 이미, 해병대 장성들의 인사는 임성근 前 사단장이 보직 없이 앉아 있는 바람에 인사 적체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임성근 前 사단장 기수가(해사 45기) 후보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만약 채수근 상병 사건이 없었다면, 임성근 前 사단장이나 지금 전비태세 검열실장 자리에 앉아 있는 조영수(해사 45기) 소장 둘 중 한 명이 해병대 사령관이 됐을 수도 있다. 그들은 유력한 후보자였다.
문제는 임성근 前 사단장이 채수근 상병 사건으로 ‘인공위성’ 상태가 되었다는 것. 2022년 7월 28일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수사 결과가 나왔을 때 임성근 사단장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책임을 통감한다.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
사실상 사의 표명이었는데, 이때 전역을 해야 했다. 그랬다면, 해병대 인사가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의 고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임성근 前 사단장이 물러나지 않는 바람에 해병대는 이후 2년 반 동안 마비 상태가 됐고, 인사는 비정상적으로 굴러간다(윤석열 정권에게도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결국 돌고 돌아 해병대 사령관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반기 장성 인사 전에 군 내에서 언급된 후보는 크게 3명이었다.
1안, 조용수 전비태세검열실장(해사 45기)
2안, 주일석 해병 1사단장(해사 46기)
3안, 정종범 해병 2사단장(해사 47기)
만약 1년 전이었다면, 여기에 임성근도 추가되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격노’는 옳은 것이고, 이걸 증명하기 위해서 임성근의 결백을 만천하에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그를 승진시켰을 가능성이 크다(실제로 작년에 그를 ‘전비태세검열실장’ 자리에 앉히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 임성근을 승진시킨다는 건 그 자체로 정권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3명의 후보군으로 압축되었다. 여기서 조용수 소장은 일찌감치 논외로 밀려난다. 그의 능력이나 평판보다, 그의 동기인 임성근이 걸렸다. 임성근은 소장 보직을 1년 넘게 차지한 채 무보직으로 돌고 있었다. 만약, 조용수 소장을 승진시켰다가는 임성근과 비교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정종범 해병 2사단장의 경우 임성근 보다 2기수 밑이다. 파격이다. 어지간하면, 선배들보다 2기수 아래를 파격 승진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채수근 상병 사건에 한 발 걸치고 있는 인물이다. 이종섭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아 적었던 게 바로 그였다.
이렇게 해서 남은 인물이 주일석 소장이다. 더 이상의 소란을 '그들'도 원치 않는다면, 그를 승진시켜 해병대사령관 자리에 앉히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 안전한 선택지였다.
떠나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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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해병대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임성근 前 사단장도 결국 떠날 것 같다. 그는 3개월 기한의 정책 연구관으로 발령받은 상태다. 정책 연구관이라 뭐 거창한 게 아니다.
“너... 이번에 보직 못 받을 거 같다. 그러니까... 음... 그래 시간 좀 줄 테니까, 주변 정리 좀 해.”
정도의 자리이다. 군인에게 있어서 보직이란 곧 자신의 임무를 의미한다. 그 임무를 받지 못했다는 건 나가라는 소리다. 이렇게 나가기 전에 준비기간을 주는 게 정책 연구관 자리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가기 전에 시간 좀 가지라는 임시 보직이다.
국방위에 출석한 김용현 국방부장관이,
“정상적으로 보직을 못 받았기 때문에 전역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렇게 말했으니, 전역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다. 게다가 자기보다 한 기수 후배인 주일석 소장이 사령관으로 들어오면서 관례상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임성근은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온다. 길었던 2년. 해병대는 만신창이가 된 뒤에야 겨우 정상궤도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오래 헤맸다고 해야 할까? 법적인 절차를 다 떠나서, 지금 이 타이밍에 임성근과 김계환 모두를 내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용산은 지금 만루 작전을 펼치는 게 아닐까?”
만루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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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까지만 해도 정권의 아킬레스건은 채수근 상병 사건이었다. 김계환과 임성근을 지키는 것이 곧 용산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용산은 국민들과 ‘기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채수근 상병 사건을 덮어버리는 위기가 등장했다.
명태균
명태균의 등장은 김건희 여사를 등판했다. 채수근 상병의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였지만, 명태균의 등장은 김건희 여사를 전면에 부각했다.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녹취록이 터지고, 돈 문제가 오가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정치 브로커 사건의 진행 방식이며, 국민감정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정치권에서도 할 말이 생겼다. 이건 자기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임성근 前 사단장이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문제는 하찮게 보였을 것이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지금 용산의 상황을 보면 8:8 동점 상황에서 9회 초 수비를 하는 느낌이다. 무사에 3루 주자가 나가 있는 상황.
외야로 띄운 희생플라이 하나로도, 스퀴즈 하나로도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이다. 3루 주자가 들어오면 게임은 끝난다. 이 상황에서 용산은 만루 작전에 들어갔다. 올봄까지는 목숨처럼 지켜야 했던 임성근이지만, 이제 필요가 없다. 김건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2루 1루를 다 채우고, 홈에서 포스 아웃 시키겠다는 생각으로 고의사구를 보낸 것이다.
“김건희만 지킨다. 3루 주자만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당장 지지 않는 게임을 하기 위해 어지간한 건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아니면, 그들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손쉽게 내보낼 거였다면, 처음부터 고집 피우지 말고 원칙대로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질없는 기대였을 것이지만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