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것은 그의 전략이 먹힌 결과다. ‘룰의 함정’을 잘 이용했다. 대선 후보까지 지낸 관록의 김문수 전 장관은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장 대표를 20%p 이상 앞섰다. 이 조사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역선택을 막는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크게 보면 지지층 여론에서 김 전 장관이 확실한 우세였던 셈이다.
하지만 반영 방법이 관건이었다. 책임당원 투표가 80%나 반영되는 반면 여론조사 반영비는 20%에 불과했다. 룰을 고려해 장 대표는 이재명 정권에 반감이 강한 강성 당원이 좋아할 선명성에 집중했다. 그 결과 2368표라는 미세한 표차로 승부가 갈렸다.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승리한 장 대표는 당선 일성으로 “이재명 정부를 끌어내리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그가 '윤 어게인' 세력에게 어필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고 탄핵을 운운하더니 결국 정권 붕괴로 이어졌던 것을 봤기 때문에 '강성 야당'이 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가졌지만 지금 국민의힘은 자체 의석으로 법안 통과도 막기 힘들다.
장 대표는 이런 한계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당내 경선을 하다 보면 과거 사건들에 대해 내부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으니 과거 이슈들이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는데, 전당대회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정권을 견제하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민생 정당이 되도록 미래로 나아가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특히 소수 야당의 대표로서 대여 관계에 대한 그의 인식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협치가 이뤄지려면 힘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국민의힘 의원 107명으로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국민의 지지뿐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여당과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이 내려가 힘의 균형이 이뤄질 때 협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장 대표는 당선 이후 며칠 만에 변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당대회 때는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인선하고 당을 정비할 시간”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의 당직 기용설에 대해서도 “당 밖에서 의병 생활이 더 맞는 옷”이라고 거리를 뒀다.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강성 지지층을 묶어두면서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중도층까지 지지 기반을 넓히려면 장 대표에게 변신은 예정된 루트였을 것이다.
하지만 장 대표의 계획이 성공하는 조건에는 이재명 정권의 인기 하락이라는 변수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변신이 더 화려하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이 상징적이다. 장 대표는 당선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요청받자 “잘못된 외교 노선 등이 대한민국의 위기가 될 것이라고 말씀드려왔다”면서 “우려가 현실로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다소 하락했던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원상 회복됐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6~2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직무 수행 긍정 평가의 이유로 외교가 21%로 가장 많이 꼽혔다. 이 조사에서 중도층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8%, 국민의힘 14%였다(자세한 조사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정상회담 성공의 배경에 꼼꼼한 전략과 대비가 있었겠지만,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변모가 결정적이었다.
“셰셰” 발언이 친중 시비를 낳던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은 라디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과 관련해 “어떤 수모든 강압이든 제 개인 일이 아니고 국민을 위한 거니까 필요하면 가랑이 밑이라도 길 수 있다”며 “대통령이 잠깐 접어줄 경우 5200만이 기를 펼 수 있다면 접어줘야죠”라고 말했다. 여론에 반응하는 이 대통령의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검찰개혁 방안을 당에서 밀어붙이려 하자 “내가 주재할 수도 있다”며 토론을 주문했다. 예정에 없이 주말에 강릉을 방문해 식수난을 직접 챙겼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등 내년 지방선거를 고려한 정책과 공약도 앞장서 마련 중이다.

야당 대표를 만나려 하지 않던 윤 전 대통령과 달리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먼저 청했다. 여당 의원들과의 청와대 영빈관 오찬 간담회에선 야당을 과도하게 밀어붙이지 말고 협치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이래서 정부 여당이 잘못하기만 기다리다가는 장 대표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지 모른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속 변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