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발효과학의 마법사, 미생물에게서 배운다

2025-06-08

자연생태계에서 생물권은 생산자·소비자·분해자로 구성돼 있다. 생산자는 식물, 소비자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포식자들이며, 분해자는 미생물들로 소비자들이 배출한 유기물을 다시 무기물로 환원시켜 생산자의 광합성을 돕는다. 바이러스·박테리아·곰팡이·아메바 등 미생물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피라미드 분포에서 하위계층을 형성하며, 그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우리 몸만 하더라도 100조개의 미생물이 존재한다.

미생물은 단순하지만 생태계 순환에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숲 생태계에서 흙 속의 수많은 균사들이 식물간의 영양분을 소통시켜 다양한 종의 식물들이 공생함으로써 건강한 숲 생태계를 유지시킨다. 특히 발효과학에서 미생물은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발효란 식물·동물의 원재료를 효모·곰팡이의 미생물들이 작용해 물리적·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발효과정에서 미생물의 역할은 첫째, 맛을 낸다. 미생물이 스스로 영양분을 구하기 위해 음식물에 포함된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20여 종의 아미노산이 나와 독특한 맛을 낸다. 아미노산에는 단맛·짠맛·신맛·쓴맛 등 여러가지 맛을 내는 성분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글루탐산나트륨으로 조미료의 원료로 사용된다. 식초·간장·된장·고추장 등 발효식품은 음식의 조미료 역할을 해서 맛을 돋운다.

둘째, 영양분의 흡수를 돕는다. 단백질은 재료의 종류에 따라 부드럽거나 딱딱하거나 여러 가지 물성을 지닌다. 딱딱하면 몸에 흡수가 어렵다. 미생물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부드럽게 만들어 흡수를 돕는다. 콩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콩에 누룩과 소금에 강한 미생물을 넣어 단백질을 분해시킨 된장과 간장, 삶은 콩으로 낫토균을 번식시킨 낫토 등이 그 예다.

셋째, 음식물을 오래 보존한다. 원래 발효는 그 옛날 음식물이 부패하지 않고 오래 먹을 수 있도록 고안한 방식에서 비롯됐다. 이후 과학의 발전으로 발효의 효능과 우수성이 밝혀진 것이다.

해외여행으로 낯선 나라에 갔을 때 배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우리 몸의 미생물이 풍부하지 못한 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면역체계 문제로 미생물의 다양성이 부족하면 익숙하지 못한 음식물을 잘 흡수하지 못해 그러하다. 미생물은 맛을 내고 영양분을 흡수시키고 환경 변화에 대한 면역력을 강화시켜 개체와 개체, 개체와 환경 간을 잇는 연결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현대인들은 미생물이 제거된 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함으로써 면역력 저하를 겪고 있다.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력 저하는 공부함에 있어 연결(자) 없이 지식을 습득하는 격이다. 맥락 없는 학습 행위, 즉 현장과 연결되지 않는 앎, 구체적 삶에 바탕하지 않는 주장, 응용력을 상실한 공부와 같이 내생성이 결여된 지식 습득 행위다. 그토록 강조하는 산업생태계, 혁신생태계도 산업 부문간, 산업계와 학계 간에 미생물과 같은 연결의 토대가 부재한 상태에서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대개 식재료를 불로 가열하거나 미생물 발효를 통해 변화시켜 음식으로 먹는다. 전자는 외부의 열로써 반응하므로 외생적이고, 후자는 내부 시스템으로부터 반응하므로 내생적이다. 내생적 변화가 토대가 될 때 진정한 지식의 개명이 가능하고 지속가능하다.

이덕희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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