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대 연구팀, 10년간 31개국 자료, 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분석으로 어린이 사망률 높이는 사회 경제적 요인 규명
[바이오타임즈]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은 전 세계에서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이 가장 높은 곳으로, 출생아 1,000명당 74명이 사망한다. 이는 북미나 유럽보다 14배나 높은 수치이며, 2021년 기준 전 세계 5세 미만 아동 사망의 80% 이상이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설사, 말라리아, 조산 등 주요 원인이 대부분 예방 가능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사망률이 지속되고 있다.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 캠퍼스 연구진은 이러한 높은 사망률이 산전·산후 관리, 분만 서비스, 영양 및 위생 관리 등 보건 서비스 이용 패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10년에 걸친 31개국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8월 22일 게재됐다.
연구팀은 9,000건 이상의 5세 미만 아동 사망 사례를 포함한 대규모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통계학적·머신러닝 기법을 적용했다. 그 결과, 어머니와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고, 보건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고이용 그룹’일수록 아동 사망률이 현저히 낮았다. 반대로 저이용 그룹에서는 서비스 부족이 곧 높은 사망 위험으로 이어졌다. 이는 교육 수준, 거주지, 가정의 경제력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이 아동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어머니들은 크게 세 가지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저이용 그룹으로 모유 수유 비율은 높지만, 교육이나 고용 기회가 적고, 농촌 거주가 많아 보건 서비스 전반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두 번째 중간 이용 그룹은 산전·산후 진료는 받았지만, 병원 분만 비율은 낮았다. 이는 교통 등 물리적 장벽이 출산 시 의료기관 이용을 막는 중요한 요인임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고이용 그룹은 위생 시설과 안전한 식수 이용, 가족계획, 출산 간격 관리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높은 이용률을 보였고, 이 그룹에서 아동 생존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가별 차이도 뚜렷했다. 일부 국가는 보건 서비스 접근성이 높아 이용률과 아동 생존율이 동시에 향상됐지만, 다른 국가는 서비스 이용이 단편적이고 불균형적으로 분포했다. 연구진은 “정책적 자원을 가장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집중해야 한다”라며, 단순한 공급 확대를 넘어 실질적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에 참여한 나쥬코 박사과정 연구원은 “가난한 가정의 젊은 어머니들은 영양 대체 수단이 없어 모유 수유 비율은 높지만, 정작 교육이나 병원 진료 같은 기본적 서비스는 이용하기 어렵다”라며, 교육 향상과 빈곤 해소가 아동 건강 증진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루(Chenyang Lu) 교수는 “이번 연구는 국가별·집단별로 필요한 맞춤형 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며 “어떤 어머니들은 병원 진료 필요성을 알면서도 교통 문제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 이런 장벽을 파악하는 것이 정책 수립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아프리카뿐 아니라 저개발국 전반의 아동 건강 정책에도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보건 서비스 이용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아동 사망률을 낮추고 예방할 수 있는 죽음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핵심은 단순히 아프리카 지역의 문제를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구진이 지적한 “데이터 기반 보건 서비스 접근성 개선”은 이미 한국 사회가 경험을 통해 축적해 온 영역과 맞닿아 있다. 한국은 의료 인프라가 촘촘하게 구축된 국가로, 그 안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다양한 혁신 사례를 만들어 왔다.
국내에서는 이미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 스타트업이 산모·영유아 보건을 지원하는 앱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베이비타임(BabyTime), 맘스다이어리(Mom’s Diary) 등은 아기의 수유·수면·배변 기록을 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해 부모들의 일상 건강 관리를 돕는다. 공공 영역에서는 질병관리청의 예방접종 도우미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영유아 예방접종 일정을 자동 관리하고 접종 이력을 확인할 수 있어, 부모들의 편의와 접종률 향상에 기여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러한 서비스들이야말로, 아프리카와 같이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는 곧바로 생명과 직결되는 요소가 된다.
민간 디지털 솔루션과 국가적 공공 시스템이 결합한 경험은 앞으로 국제 사회에서 더 주목받을 수 있다. 특히 모바일 기반 서비스는 대규모 병원이나 전문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도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초기 구축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데이터 수집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국제기구와 NGO, 그리고 현지 정부가 협력해 사업을 확산시킬 때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실제로 KOICA와 같은 개발 협력 사업에서도 국내 기업이 보유한 모바일 보건 플랫폼이 시험적으로 도입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번 연구가 제시한 데이터 과학적 분석과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경험이 결합한다면, 글로벌 모자보건 격차를 줄이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타임즈=정민구 기자] news@bi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