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선 평창푸드시스템 회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왜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려한 걸 외부에 알리기보다는 내부를 안정적으로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는 임진선 회장의 성향,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기업 문화가 평창푸드시스템의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 임 회장의 유니크한 패션 센스와 유연한 인사이트까지. 평창푸드시스템 전체에 녹아있는 그 에너지가 아직 젊고 강렬하다. 사진=이경섭 실장
1980년대 소갈비 전성시대에 등장한 브랜드
국내에서 소갈비 소비시장이 급격하게 확대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중후반부터다. 수원의 소갈비 집들이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대중적 인기가 확산되면서 강남 지역 개발과 함께 대형 규모의 소갈비 집들도 하나둘 등장했다. 1973년 본수원갈비, 1981년 삼원가든, 1986년 벽제갈비, 1992년 가보정갈비 등 지금까지도 유명한 대부분의 소갈비 집들은 이때 수원과 강남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평창갈비도 마찬가지. 1988년 경기도 남양주에 첫 점포를 오픈하며 이름을 알려 나갔고 현재는 경기 남양주 평내 본점·마석점·호평점, 서울 방이점, 충북 청주 오창점 등 5개 직영점에서 총 70여 명의 직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올해로 37년 역사의 평창갈비가 이렇게 조용히,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온 이유는 뭘까.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오랜 세월 꾸준히 한 길 가기 위해서는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평창푸드시스템은 그 무엇보다 고기 품질에 집중하고 있고,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 또한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수만 20여 명 내외로, 구성원 간의 파트너십이 탄탄한 것도 평창갈비의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다.”
임대 아닌 건물 매입으로 점포 수 늘려
평창푸드시스템 임진선 회장이 외식업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건 1988년.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는 6년가량 인쇄 관련 사업을 하다가 ‘설렁탕집을 함께 운영해 보자’는 지인의 제안에 경기도 남양주 쪽에서 점포 오픈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계획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서 설렁탕집 오픈은 무산됐고, 제분 회사에서 일하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고깃집 운영인력들로 점포를 채워 새로운 고깃집을 준비하게 된다. 1980년대 말에서부터 1990년대 초중반은 대형 소갈비 집들의 역사가 시작되던 시기. 그만큼 소갈비는 가족 단위 외식 아이템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고, 평창갈비 또한 그 흐름 안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나가게 됐다.
“서른셋 나이에 고깃집 운영을 시작했다. 첫 외식업이었기에 모르는 것투성이였지만 능력 있는 구성원들과 함께 하나하나 공부하고 배우며 평창갈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말 당시엔 소갈비 1인분 가격이 9500원 정도였는데, 테이블 27~28개로 2500만원의 최고 일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매 순간이 쉽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1997년 IMF 때는 크게 줄어든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메뉴 가격을 50% 이상 할인 판매하기도 하고, 반찬 수를 줄여 캐주얼한 운영방식을 적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평창갈비의 운영을 안정화하는 데 집중하다가 2011년부터는 서울 구의점, 경기 남양주 마석점·평내점 등 매년 점포 수를 늘리며 확장 전략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점포 매출을 끌어올려 놓아도 건물주와의 문제가 있으면 더 오래 운영할 수가 없다. 즉 오래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정적 밑바탕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점포를 오픈할 때는 임대가 아닌 건물을 직접 매입해 운영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있다. 내 힘으로, 내 손에 붙잡을 수 있는 것만 내 것이라 생각하기에 오롯이 사업에만 집중해왔고 주식·골프·투자 같은 것엔 아예 관심도 없다. 임대가 아닌 건물 매입으로 점포 운영을 하려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의 판단과 선택 아닐까.”
소비자 식습관 및 소비 형태 변화에 대응해야
평창갈비의 메인 아이템은 소갈비다. 양념갈비·한우양념갈비 210g에 4만2000원~6만9000원, 생갈비·한우생갈비가 170g 4만7000원~8만5000원 가격으로 구성돼있다. 또 소갈비뿐만 아니라 한돈을 사용한 평창양념구이도 고객들이 많이 찾는 메뉴 중 하나인데, 자극적이지 않은 간장 베이스 양념과 곁들여지는 돼지고기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선호도 높다. 특히 250g 2만4000원의 가격은 가성비 시그니처 메뉴로서의 매력 포인트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이외에 보리굴비·간장게장·청포묵·각종 계절 요리 등이 함께 나오는 식사 메뉴 ‘스페셜 녹차보리굴비’는 점심과 저녁 시간 꾸준한 판매율을 보이는 중이다.
“밥상 위에 반찬 하나를 내더라도 여러 조건들을 고민해야 한다. 고기를 더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반찬인지, 다른 음식이나 그릇과 색 조합은 잘 되는지, 그리고 계절을 앞서가는 식재료로 찬 구성을 하고 있는지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1980~1990년대와 달리 이제는 고깃집 매출에도 한계가 있다. 고객들이 주류 주문을 잘 하지 않고, 메뉴 추가 주문 또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메뉴 가격 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즉 매출이나 수익 올리는 방식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기본에서의 디테일을 한층 더 탄탄하게 다져나가야만 한다.”
현재 임 회장은 순댓국을 공부 중이다. 술과 음식을 ‘부담 없이, 적게, 간단하게’ 먹으면서도 고기는 가득 들어간 순댓국·해장국 등의 국밥류가 요즘의 트렌드에 딱 알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로 소비자들의 식습관 및 소비 형태가 변화했다는 걸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걸 임 회장은 그 누구보다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예전엔 어른들에게 메뉴 선택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층이 식당과 메뉴를 선택한다. 즉 그들의 눈에 들지 않으면 고객 방문율부터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식업이든 온·오프라인 콘텐츠든 젊은 세대의 센스 있는 감각과 아이디어, 재빠른 실행력을 보면 감탄할 때가 많다. 그 트렌드와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저 따라가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는 것과 그냥 몸에서 배어 나오는 건 그 느낌에서부터 100%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과의 접근성을 한층 더 높이기 위해 메뉴 제공 방식, 아이템 선정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하는 중이다.”
현재 평창갈비 5개 직영점 중 2개 점포는 비대면 운영의 비중을 늘리는 동시에 반찬 수를 줄이고 메뉴 가격 또한 35% 정도 인하했다. 가격 부담이 없으면서 메뉴와 찬 구성도 간결해졌기에 고객들의 방문율도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평창갈비는 지금도 계속해서 수정하고 반영하며 ‘고객들이 자주 찾는 외식 공간’으로 서서히 진화하고 있다.
“묵은지는 오래 숙성된 맛을 낸다.
하지만 그 맛이 정답이라고만 할 수 없다.
제대로 조절되지 않으면 옛것에 대한 기준으로 고집과 텃세만 부리는
질긴 맛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 묵은지의 깊은 맛을 제대로 낼 수 없다면
차라리 겉절이 맛을 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변화란 30~40%의 불안정성 감수해야만 하는 것
평창푸드시스템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 건 외부가 아닌 내부의 변화다. 내부 구성원들의 시선과 생각이 달라져야만 외부로 보이는 결과물 또한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외부 인력을 받아들여 변화하려고 할 때도 어려움이 있다. 기존에 있던 구성원들이 변화의 귀찮음과 위험성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거부할 수도 있고, 새로운 구성원과 기존 구성원이 잘 어울리지 못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 갈등의 부분들을 하나하나 해소해야만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묵은지는 오래 숙성된 맛을 낸다. 하지만 그 맛이 정답이라고만 할 수 없다. 제대로 조절되지 않으면 옛것에 대한 기준으로 고집과 텃세만 부리는 질긴 맛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 반면, 겉절이는 깊이가 없으나 깨끗하고 새로운 맛을 낸다. 묵은지의 깊은 맛을 제대로 낼 수 없다면 차라리 겉절이 맛을 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평창푸드시스템은 매일 아침, 각 점포별로 전 직원이 ‘자유 공감’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인상 깊은 문장들을 공통 주제로 서로의 느낌을 주고받으며 스킨십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래 함께한 직원에게 업무를 하나하나 위임하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평창푸드시스템을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변화란 100%의 안정성이 아니라 30~40%의 불안정성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며, 어느 하나의 매뉴얼이 아니라 수많은 변칙과 응용의 유연성이 반영돼야만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이런 부분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해결 방법은 현장 근무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임 회장은 평창푸드시스템의 성장과 진화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오랜 역사 속에서의 안정감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준비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서 시대에 맞는 또 다른 결과물들이 만들어질 것이기에. 그렇다. 평창푸드시스템은 아직 서른일곱이다.
(주)평창푸드시스템은 1988년 경기도 남양주에 ‘평창갈비’ 첫 점포를 오픈, 올해로 37년 역사를 가진 브랜드다. 경기 남양주 평내 본점·마석점·호평점, 서울 방이점, 충북 청주 오창점 등 5개 직영점에서 연 매출 80억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직원 수만 20여 명 정도다. 안정적 운영을 바탕으로 다양한 변화 및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는, 오랜 역사의 ‘젊은 브랜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