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경쟁 점입가경

삼성전자가 올해 가전·스마트폰 구독 사업에서 1조원 매출을 내다본다. 온라인 공룡 쿠팡이 대형 가전 판매·서비스까지 영토를 넓히자, 삼성전자는 구독 사업과 직접 판매 강화로 유통 주도권 사수에 나섰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월 삼성전자 ‘AI 구독클럽’ 매출이 누적 2000억원을 넘어섰다. 연말까지 매출 1조원을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구독은 TV·냉장고·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을 월 사용료를 내고 최대 60개월 사용하며 무상 수리와 방문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LG전자는 지난 2023년 냉장고 등 대형 가전으로 구독 사업을 넓혔고, 지난해 여기서만 연 매출 1조원을 넘겼다. 삼성은 한발 늦은 지난해 12월 가전 구독사업을 시작했지만, 지난달 갤럭시 스마트폰 구독까지 돌입하며 빠르게 세몰이 중이다.
삼성전자는 그간 가전 판매에서 쿠팡을 적극 활용해 왔다. 쿠팡 로켓배송 초기인 지난 2015년부터 삼성 가전을 로켓배송에 공급했고, 2018년에는 삼성 가전제품의 쿠팡 로켓설치도 시작했다. 이후 무신사·컬리·오아시스·29CM 같은 신흥 이(e)커머스 플랫폼에도 속속 입점했다. 오프라인 매장 방문보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쿠팡이 돕는 건 삼성만이 아니었다. TCL의 TV나 하이얼 에어컨 같은 중국산 대형 가전을 쿠팡이 판매·배송·설치·반품·A/S까지 하면서, 중국산 가전의 한국 내 서비스 사각지대를 쿠팡이 메워주는 역설이 벌어졌다. 지난해 쿠팡은 세탁기·냉장고 같은 대형가전에 3~5년간 보증 수리 상품도 출시했다.

생수·휴지 같은 생필품에서 가전으로 상품 단가가 높아지자 쿠팡 실적은 힘을 받았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 2900억원으로, 국내 단일 유통사 중 최초로 40조원을 돌파했다.
이렇다보니 최근 1~2년 새 삼성전자 내에서도 문제의식이 제기됐다고 한다. 특히 지난 2022년 말 한종희 소비자경험(DX)부문장(대표이사 부회장)이 가전사업부장까지 겸하면서 D2C(Direct to Consumer, 직접판매)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소비자와 직접 거래를 늘려 마케팅 역량을 높이고, 고객 데이터도 축적해 활용하자는 거다. 특히 가전제품에 인공지능(AI)이 탑재되는 등 기능이 고도화되고 일상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구독 사업은 힘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 구독과 보상판매를 결합한 ‘뉴 갤럭시 AI 구독 클럽’에는 노태문 MX 사업부장(사장)이 각별히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지난 1월 갤럭시 S25 공개 행사에서 임성택 부사장(한국 총괄)은 “AI 스마트폰 시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려는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애플은 지난 19일부터 한국 내 애플스토어 매장 아이폰 구매 고객에게 무이자 할부 기간을 3개월에서 24개월로 늘렸는데, 다분히 삼성을 의식한 행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 D2C 강화를 위해 인사와 조직도 움직였다. 1년 전 퇴임했던 이원진 사장이 지난해 말 글로벌마케팅실장으로 현업에 복귀했다. 글로벌 브랜드·마케팅 전략 총괄 수장을 구글 출신의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인 이 사장에 맡긴 것이다. ‘브랜드’보다 ‘마케팅’에 방점을 둔 인사라는 해석이다.
글로벌마케팅실은 최근 CEO 직속이던 빅데이터센터를 가져왔다. 그간 구축한 데이터 인프라를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D2C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2023년 실 산하에 신설한 D2C센터는 요기요 출신 강신봉 부사장이 이끌며, 글로벌 마케팅 인재들이 포진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