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 공항에서 여객기와 군용 헬기가 충돌한 사고로 탑승자 67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희생자 가운데에는 미국 피겨스케이팅 유망주로 꼽혔던 한국계 선수 2명과 그들의 가족이 포함됐다.
이번 사고는 2001년 11월 12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인근 주택가로 추락해 260명 전원이 사망한 이래 인명 피해가 가장 큰 항공기 사고다.
30일 미국 구조 당국에 따르면 추락한 아메리칸항공 여객기에 탑승했던 승객 60명과 승무원 4명 등 64명 중에는 캔자스주(州)에서의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던 선수와 코치, 가족 등 14명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 중 6명은 ‘보스턴 스케이팅 클럽’ 소속으로, 이 클럽에서 훈련해온 한국계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지나 한(13)과 그의 모친 진 한, 한국계 남자 피겨 선수 스펜서 레인(16)과 그의 모친 크리스틴 레인 등도 희생자 명단에 포함됐다.
지나 한 선수는 미국의 여자 피겨 유망주로 주목받아온 한국계로, 2022년 언론 인터뷰에서 “올림픽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며 올림픽 출전을 준비해 왔다. 또 지역 언론 WPRI-TV에 따르면 레인 선수는 동생 마일로와 함께 한국에서 입양돼 미국에서 피겨 선수로 빠른 성장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구조 당국은 이날 여객기 탑승자 64명과 군용 헬기에 탑승했던 3명을 포함한 67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구조 활동을 시신 수습 작전으로 전환했다.
지난 29일 오후 8시 53분께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착륙하려던 여객기는 근처 상공에서 훈련하던 미 육군 헬기와 충돌했고, 두 항공기 모두 포토맥강에 추락했다. 여객기는 추락 과정에서 동체가 3조각 났다. 이날 현재까지 시신 40구 이상이 수습된 상태다.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이날 여객기의 블랙박스로 불리는 조종석 음성 녹음 장치와 비행기록 저장 장치를 회수해 사고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고가 오바마·바이든 행정부가 항공안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능력보다 인종·성별 등 다양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라며 사고의 원인을 ‘전 정부 탓’으로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마련됐던 항공안전 인력 채용 기준을 높였지만, 조 바이든 정부가 채용 기준을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지난주에 항공교통 관제사 등의 기준을 최고 수준으로 복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며 “그들(안전 인력)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말하는지, 누구인지가 아니라 지적 능력과 재능이 중요하고, 그들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군용 헬기가 정기 훈련을 하던 중 비극적 실수가 있었다”며 “(실수는) 어떤 종류의 고도와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사고의 원인을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면서도 “헬기가 명백하게 적절한 방향 전환을 하지 않았고 지시 받은 것과 약간 반대로 했다”며 헬기의 고도 문제를 지적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전날 사고 직후 폐쇄됐던 레이건 공항은 이날 정오께 항공기 운항을 재개했지만 여러 항공편이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