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스타트업열전] 사모펀드 '먹튀' 논란, 유럽 살펴보니

2025-03-25

[비즈한국] 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 사회는 다시금 ‘먹튀 논란’으로 들끓었다.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비롯해 사모펀드(PE, Private Equity)의 ‘바이아웃(buyout)’ 전략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이아웃은 잠재력 있는 기업을 인수한 후 성장시켜 재매각해 이윤을 남기는 사모펀드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것은 2015년. 7조 2000억 원가량의 대규모 투자였고,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바이아웃 사례로 꼽혔다. 그러나 인수과정에서 약 5조 원의 부채를 떠안았고, 이후 경영 과장에서 부채 상환에 집중하면서 필요한 투자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국민연금이 홈플러스 인수 당시 투자한 6000억 원과 미지급 이자를 포함해 약 9000억 원을 손실 낼 위기에 처하자 공적자금 손실 우려와 함께 대중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사모펀드=바이아웃=먹튀’라는 연상작용이 발생하게 되면서, 한국에서는 바이아웃 전략이 ‘정상적인 투자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과거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대우조선 매각 무산 등이 사모펀드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겼는데, 이번 홈플러스 사례는 그 이미지를 다시 소환한 셈이 됐다. 홈플러스가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직접 경험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크다는 점도 한몫했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대규모 투자나 혁신은 드물었고, 오히려 매장 수는 줄고 서비스 질은 하락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예전만 못하다”는 경험이 그대로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비용 최적화를 위한 전략이지만, 소비자에게는 ‘사모펀드가 기업을 죽이는 주범’처럼 비친 셈이다.​

유럽에서 사모펀드의 이미지나 바이아웃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다.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수익을 내기도 하고 손실을 보기도 하지만, 단순히 투자 성과가 아닌 기업의 건강한 성장과 관련해서도 좋은 투자, 또는 나쁜 투자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럽에서는 현지 트렌드 및 정책 방향에 따라 기업 전반의 ESG경영 전략이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모펀드도 환경, 사회, 거버넌스 측면에서 모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한국보다는 좀 더 탄탄하게 자리 잡은 편이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한 후 스케일업 단계에서 사모펀드가 참여하는 일은 흔하다. 공공성과 기술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장기 파트너십의 구조로 사모펀드가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도운 좋은 사례가 있다.

유아이패스(UiPath)는 루마니아에서 시작해 글로벌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아 스케일업에 성공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초기 VC 투자 이후 코튜(Coatue), 알키온(Alkeon) 등 PE 성격의 펀드가 참여하며 글로벌 진출이 가속화됐다. 2021년 4월 유아이패스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성공적으로 엑시트(exit)를 하게 되었다.

독일 스타트업으로 이제는 유니콘이 된 셀로니스(Celonis)도 좋은 사례다. 셀로니스는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시각화하고 개선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다양한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2021년에 기업가치 110억 달러로 평가받으며 시리즈 D 라운드를 투자를 받았는데, 이 투자 라운드는 사모펀드인 듀러블 캐피털 파트너스(Durable Capital Partners)와 투자회사인 티 로 프라이스 어소시에이츠(T. Rowe Price Associates)가 주도했다. 또한, 자산운용사인 프랭클린 템플턴(Franklin Templeton)도 투자에 참여했다.

셀로니스는 독일의 스타트업이지만, 이 미국계 PE의 투자를 계기로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스타트업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 주에는 뉴욕의 경제테크 미디어인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 & Inc)가 ‘2025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선정하는 등 여전히 평가가 좋다.

독일 뉘른베르크에 본사를 둔 오픈소스 운영체제 기업 수세(SUSE)는 유럽 기술산업의 ‘보석’이라 불린다. 리눅스 기반 서버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2000년대 초반 글로벌 대형 IT기업들의 인수 합병에 휘말리며 수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2018년 스웨덴 사모펀드 EQT가 수세를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 포커스(Micro Focus)로부터 약 25억 달러에 인수했다.

EQT의 인수 과정에서 수세는 기술 독립성 보장, 유럽 본사 유지, 인력 확충을 요구했고, EQT는 실제로 이 약속을 지켰다. 수세의 R&D 인력을 2배 이상 늘리고, 유럽 내 보안 인증 프로세스를 강화해 정부·공공기관을 위한 배포판을 출시했다. 2021년에는 수세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며 엑시트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수세는 사모펀드의 인수로 성공한 좋은 사례일까? 아직 속단은 이르다. EQT는 2023년 8월 수세의 잔여 지분을 다시 인수하며 상장폐지를 추진했다. 소액 주주에게 67% 가량의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사들이면서 자발적 상장폐지를 실시했다. 수세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 상장 폐지는 ‘비상장 상태에서 장기 혁신을 위한 유연성 확보’가 목적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EQT와 비공개 파트너십을 통해 함께 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수세의 사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EQT 인수 이후 수세는 기술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유럽 내 오픈소스 기업으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약속한 대로 독립 경영을 보장 받았고, ESG 고려 등 공공적 요소를 반영한 바이아웃 구조로 주목을 받았다. 2021년 IPO는 당시 기준으로는 엑시트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IPO 이후 주가 부진이 이어지면서 시장이 수세의 성장성을 과대평가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다시 상장폐지를 한 것은 공개 시장에서의 전략 실행이 실패했고, 단기 엑시트를 위한 상장이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수세의 사례는 단순히 회사를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고용, 지역 산업까지 보호하며 성장시킨 모델로서 볼 때, PE의 역할론에 대해 고민하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사모펀드가 본목적인 수익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바이아웃은 결국 자본과 기업 간의 ‘거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래 방식과 철학은 스타트업을 키우는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자.

스타트업을 성장시켜 스케일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사모펀드가 ‘먹튀’라는 오명을 벗고 장기 성장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재무 중심의 바이아웃만이 아닌 사업 구조 및 내용에 대한 혁신이 동시에 필요하다. 투명한 엑시트 전략과 함께 고용 유지, 기술 보호 등의 공공성도 함께 가져가는 책임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 결국 회사가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지만, 대중의 공감을 얻을 전략이 있어야 그 결과도 반감을 사지 않는다. 이미지 손실이나 대중적 평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업적 혁신 전략에서도 공감을 얻어내야 투자에서도 성과가 난다는 말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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