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삶이 어딘가 무겁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출근길 신호등 앞에서, 회의가 끝난 뒤 텅 빈 사무실에서, 혹은 충만감 없는 하루를 겨우 밀어낸 퇴근길에서. 그럴 때 문득 떠오른다. 여행 가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은 떠나지 못한다. 시간도, 돈도, 용기도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라는 단어 뒤에 자꾸 자신을 숨긴다. 이희진 작가의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는 그 ‘언젠가’를 지금으로 바꾸었던 사람의 기록이다.
돌연 퇴사를 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훌 떠났다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23년간 직장인이었던 그는 모험가도, 인플루언서도, 유튜버도 아니었다. 다만 소진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틈날 때마다 떠났다. 그렇게 300개의 도시를 걸었다. 혼자서. 느리게. 깊이.

세계 각지를 다룬 알차고 생생한 여행지 소개도 아니다. 튀르키예의 풍경, 이탈리아의 골목, 포르투갈의 파도는 그저 무대일 뿐이다. 중심에 있는 건 늘 ‘나’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느 여행지에서 마주친 이 문장이 이 책 전체의 방향을 조용히 말해준다.
저자는 삶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걷고, 바라보고, 때로는 멈췄다. 여행은 그에게 인증샷이 아닌 성찰이었다. 남의 인생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다짐한 모나코에서, 무릎 꿇고 울고 싶던 스페인의 어느 골목에서, 낯선 테이블에 앉아 자신과 조용히 대화하던 크로아티아의 저녁에서 그는 자신을 조금씩 되찾았다.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는 그 긴 여정의 기록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온 그가, 삶의 균열을 여행으로 치유해온 회복 일지다. 세계 300개 도시를 걸으며 마주한 풍경과 감정은, 단순한 여행 에세이를 넘어선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행복’, ‘고통’, ‘상실’, ‘관계’, ‘떠남’이라는 주제를 따라간다. 튀르키예 이스탄불부터 그리스 산토리니까지, 작가는 도시들을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힘겨운 직장 생활 속에서 그는 여행을 도피가 아닌 회복의 도구로 삼아왔다.
특히 인상적인 건 그의 여행 방식이다. 도시를 스치듯 소비하지 않고, 머물며 걷고 바라보는 속도에서 진짜 자신을 마주한다. 여행은 작가에게 일상을 더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한 훈련이었고, 낯선 골목에서 마침내 자신을 되찾는 방법이었다.
이 책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닌, 삶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조용한 위로이자 초대장이다.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 당신을 위한 책이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핫클릭]
· [이주의 책] 브랜드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기억 '핵심경험론'
· [이주의 책] 결국 같이 살아가기 위하여 '꿀벌, AI 그리고 브랜드'
· [이주의 책] AI 시대 '패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역량
· [이주의 책] '동물애호가' 영국의 부끄러운 역사 '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
· [이주의 책] 윤석열 정권 뉴라이트의 실체 '대한민국 보수는 왜 매국 우파가 되었나?'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