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협, 국회에 건의서 전달
중대재해 기준 완화 요청
학계서도 개정 논의 활발
안전관리체계 현실화 필요
[정보통신신문=이민규기자]
내년 1월 27일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된다. 이 법은 근로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안전관리시스템의 미비로 일어나는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그렇지만 법안의 주된 내용이 기업과 사업주에 대한 징벌적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숱한 논란을 불러 왔다.
더욱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힘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과도한 안전책임을 부과함으로써 재해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 더해 올해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명 이상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적용되면서 정보통신공사업체 등 대다수 중소기업에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법 제정의 기본 취지를 살리고 안전관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일선 기업의 경영부담을 덜고 행정력 낭비를 막기 위해 현장과 괴리된 독소조항을 손질하는 게 시급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건설협회는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한 건의서를 전달했다. 이 건의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명칭을 ‘중대재해예방법’으로 바꾸고 안전사고 책임자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의 명칭 변경은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에서 벗어나 안전·보건 의무사항을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뜻을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건의서는 중대산업재해의 기준을 완화하고, 법 위반에 대한 처벌 및 징벌적 손해배상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담았다.
중소기업 유관단체와 학계, 법조계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개선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지난 5월 중소기업중앙회가 개최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및 산재예방 방안 토론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등 헌법의 원칙과 안전원리에 배치되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로 인해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 집행이 우려되고 오히려 재해예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하루빨리 대대적으로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되거나 충돌하지 않도록 처벌대상을 개인이 아닌 법인으로 한정하고, 범죄 구성요건을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도급·용역·위탁 등의 관계에서 관련주체의 위상과 역할에 알맞게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는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명구 을지대학교 바이오공학부 안전공학전공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양벌규정과 처벌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징역형의 형량을 무조건 1년 이상으로 정한 것은 과다하며, 벌칙의 하한 규정을 둬야 한다면 차라리 벌금의 하한선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교수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관한 규정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 분석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제4조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같은 법 시행령 제4조 제8호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대응조치에 관한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중대산업재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구호조치와 추가 피해방지를 위한 조치도 안전관리 매뉴얼에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해당 매뉴얼에 따라 조치하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이 같은 의무규정을 완벽하게 이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운 게 대다수 중소기업의 현실”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의 불명확하고 과도한 의무사항과 1년 이상 징역 등 무거운 형사처벌 규정은 반드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