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 피해 게시글 줄이어
‘배구여제’ 마지막 경기 팬심 악용
프로야구도 수십만원 암표 기승
2024년 암표 신고 건수 4년 새 10배
현장서 걸려도 벌금 20만원 그쳐
매크로 이용 입증도 쉽지 않아
“처벌 수위 상향 등 제도 개선 필요”

배구 팬인 20대 이모씨는 8일 배구선수 김연경의 은퇴 경기를 보기 위해 티켓 예매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웃돈을 주고라도 표를 구하고 싶었던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 “표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씨에게 곧 “티켓을 팔겠다”는 연락이 왔고, 정가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이었지만 구매를 결심했다. 그렇게 이씨는 판매자 계좌로 돈을 보냈지만, 끝내 티켓을 받지 못했다. 그가 문제를 제기했을 땐 판매자가 이미 잠적한 상태였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이씨가 제출한 암표 사기 사건 고발장을 접수해 수사에 나섰다.
국내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하고 봄을 알리는 축제와 콘서트가 이어지면서 암표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통상 개인 간 거래를 통해 이뤄지는 암표 사기는 수법이 단순하지만 피해 사례는 해마다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암표 사기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신고센터를 활성화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김연경의 은퇴 경기 표를 구한다는 문의글과 함께 암표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촌 동생이 암표 사기에 당했다는 A씨는 “중고나라에서 5차전 표를 구매하기 위해 36만원을 입금하니 사기꾼에게 차단당했다”며 “해당 사기꾼은 아이디를 바꿔가며 똑같은 글을 반복해 올리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최근 개막해 역대 최소경기(60 경기)로 1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세운 프로야구에서도 암표는 고질적인 문제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암표는 정가의 10배가 훌쩍 넘었고, 올 시즌도 수십만원에 달하는 주말 암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리그 내 10개 구단과 협력해 암표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응 강화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이런 프로스포츠 등에서 벌어지는 암표 사기는 매년 증가 추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암표신고센터에 따르면, 2020년 6237건에 그쳤던 신고 건수는 지난해 8월 기준 5만1405건으로 8배 이상 뛰었다. 작년 총 신고 건수는 역대 처음으로 6만건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범행은 주로 온라인에서 구매자에게 티켓값만 받고 잠적하거나, 가짜 티켓을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명 ‘매크로(자동 반복 입력 프로그램)’를 이용해 표를 다량 구매한 뒤 이를 암표로 팔아 큰 수익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는 “입장권의 구매나 거래 모두 온라인으로 이뤄지면서 소비자 피해도 예전보다 대폭 증가한 상황”이라며 “범죄자 입장에선 더욱 수월하게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표 근절을 위한 조치는 부족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현행법의 처벌 강도가 약하다는 지적이다.
현장 암표 거래는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2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불과해 암표 수익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온라인에서 기승을 부리는 암표 처벌에 관해서는 지난해부터 매크로를 활용할 경우 최대 징역 1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매크로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이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용훈 변호사(법무법인 대륜)는 “일부 암표상의 경우 수익보다 처벌 수위가 낮다는 우려가 크다”며 “지금보다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수익금의 일정 부분 이상 더 벌금을 부과하는 등 부가 규정을 통해 이익을 박탈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희 교수는 “단순히 감시하는 공무원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며 “암표 거래 활동을 수집하는 신고센터를 활성화하고 이를 경찰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한서·변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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