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 당신의 말버릇, 그 안에 숨은 것

2025-09-16

사람은 말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가 하루에 쏟아내는 수많은 단어들은 그냥 흩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성격을 담고 있다. 유독 자주 쓰는 단어나 표현, 혹은 어감이 있다면, 그 무의식적인 패턴 속에는 어떤 것이 숨어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늘 비워두는 말을 한다. 문장 끝을 “~인 것 같아요”로 표현하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뭔가 또렷한 주관은 없어 보이지만 내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를 열어둔다. 상대방의 말에 연신 “그쵸”하며 맞장구쳐주는 것은 단순한 동의를 넘어 ‘우리 같은 편이죠?’ 하고 유대감을 확인하는 신호이며, “좀~”이라는 부사는 딱딱한 명령이나 요구를 완곡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말 중에 “가령”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많진 않은데 추상과 구체를 연결시키는 것에 능하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쓴다. 이런 무의식적 언어패턴을 쓰는 사람에게 대화란 정답을 제시하는 경쟁이 아니라,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반면, 어떤 사람은 말을 통해 질서를 세우고 상황을 정리하려 한다. 그의 세계에서 애매한 것은 참을 수 없고 명확한 결론이 중요하다. 자칫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규범화되어 타자의 생각을 자기식대로 판단하는 폭력성이 비어져 나오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간결하고 직선적인 명령형이나 평서형의 어미를 좋아한다. “원래” 혹은 “원칙은”이란 단어는 기존 규칙이나 관습을 따르는 보수적인 태도 같지만 실제 대화 속에서는 나의 주장은 절대 거스를 수 없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무조건”, “반드시” “당연히” 라는 부사는 단정적이고 확신에 차있어 명쾌해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내가 제일 불편해하는 경우는 이런 자기 확신을 넘어 타인을 가르치려드는 사람들인데 “내 경험상”을 입버릇처럼 하거나 “그게 뭔고 하면~” 하는 식으로 부탁하지도 않은 설명을 늘어놓는 자들이다. 이런 말투는 상황통제 욕구가 높고 타인의 방식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자기중심적인 경향의 사람들에게서 자주 보여진다.     

혹시 당신도 습관처럼 누군가의 말을 끊고 “아니”로 시작하거나 “사실은”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상대방의 의견을 부정하고 대화를 자기 쪽으로 끌고 가려는 무의식의 발로 일 수 있으며 “완전”, “진짜”, “대박”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감정이 풍부해 보이지만, 때로는 모든 일을 조금씩 부풀려 말하는 습관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사소한 말투나 자주 쓰는 단어들은 나도 모르게 나의 성향과 무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말도 있다. 막연한 칭찬이 아니라 상대가 애쓴 과정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말. “왜 그랬어?”라고 다그치기보다,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 궁금하네”라고 의도를 먼저 물어주는 존중의 말. 그리고 실패했을 때 함께 해결해보자고 다독이는 지지의 말. 이런 말들은 ‘나는 당신을 믿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그 믿음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결국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말들은 각자의 세계가 충돌하고, 스며들고, 서로를 휘어 감는 과정의 기록이다. 사람들의 말버릇 속에는 의식하지 못한 각자의 삶과 세계가 숨어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뱉은 말 한마디는,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솔직한 거울인 것이다.

전민정 부안군문화재단 사무국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의 말버릇

기고 gigo@jjan.kr

다른기사보기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