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5억 원에서 1조 3808억 원으로 불어났다가 16일 파기환송으로 이어진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은 롤러코스터 같은 행보를 보였다. 양측의 소송은 최 회장이 언론을 통해 혼외자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최 회장은 2015년 12월 한 언론사에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다. 현재 부부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A4용지 3장 분량 편지를 보냈다.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맺은 인연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88년 9월 결혼한 두 사람이 27년간의 부부 생활이 순탄치 않았음을 세상에 알린 셈이었다.
최 회장은 2017년 7월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노 관장이 이혼에 반대하면서 조정이 불성립돼 합의 이혼은 무산됐다. 이에 최 회장은 이듬해 2월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노 관장은 2019년 12월 페이스북에 “희망이 안 보인다. 원하는 행복 찾아가게 하겠다”는 글을 남기며 위자료와 함께 1조원대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이들의 소송은 ‘세기의 이혼 소송’으로 불리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1심은 2022년 12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665억원의 재산을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해 노 관장의 기여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이에 노 관장 측은 2심을 앞두고 변호인단 전원 교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변호인단에는 김기정 법무법인 율우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 이상원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23기), 김수정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31기)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중소형 로펌 소속 전관 출신들이었다. 이 같은 교체 전략은 항소심에서 주효했다. 지난해 5월 서울고법은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보관한 ‘선경 300억 원’ 메모와 1992년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 약속어음 등 ‘노태우 300억 비자금’ 관련 증거 대부분을 인정했다. 이에 재산분할 액수는 1심의 약 20배에 달하는 1조 3808억 원으로 늘었다. 항소심은 이례적 판결 이외에도 최 회장과 노 관장이 모두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6년 만에 대면하는 그림을 연출했다.
항소심 이후 최 회장 측은 같은 해 6월 재판 관련 설명회를 열었다. 최 회장은 직접 참석해 “개인 일로 심려를 끼쳐 사과드린다”면서도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그는 상고심을 앞두고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과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을 지낸 홍승면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18기)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이어 법무법인 율촌의 이재근(28기)·민철기(29기)·김성우(31기)·이승호(31기) 변호사 등 가사 사건에 해박한 인사를 추가로 영입했다. 반면 노 관장 측은 법원장과 감사원장을 역임한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전 감사원장)을 변호인단에 합류시켰다. 양측은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육성 파일과 최 회장의 ‘옥중 서신’을 각각 증거로 제출하는 등, 상고심에서도 치열하게 맞섰다. 결국 대법원이 재산분할 부분에 대해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