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중반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시조다. 그는 자신의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이기적인 지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서 자신을 위해 일한 사람들에게 수확물을 나눠주게 된다’는 자연의 섭리나 신의 계획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후 ‘국부론’에서는 ‘이기적인 투자자나 상인의 상행위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반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서술하며 시장 경쟁을 연상시켰다.
‘의도하지 않는 긍정적인 결과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실현된다’는 하나의 언급이 현대 경제학자들에 의해 여러 갈래로 발전해 이제는 수많은 가지를 치고 있다. 이기적인 동기가 시장의 자유를 만나 경쟁을 유발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그 후 자유시장 경제론자들의 금언이 됐다. 정부 불간섭을 주창한다. 이 원리는 그 후 여러 수정론에 의해 보완됐다. 자원 제약이 있는 경우 이기적인 개별 행동은 전체의 파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공유지의 비극을 위시해 환경문제와 같은 부의 외부 효과가 생기는 경우 적절한 ‘손이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나 디지털 경제의 데이터 독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불평등을 해소하라는 요청도 강하다.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도 환경문제와 같은 부의 외부 효과가 발생하거나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 특수성이 있는 영역에서는 그 주장의 한계를 인정한다. 불완전 시장이나 독과점이 있는 곳에도 그렇다. 더구나 자유시장 지상주의자나 규제 철폐론자의 경우에도 사회적 연대나 공동체 공존의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계의 중심 공론은 개인이나 개별 기업의 행동은 경쟁 구도 아래에서 더 순도 높게 보장돼야 하며 정부나 시민사회의 관여는 신중하고 최소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상생이나 동반 성장의 목소리는 제약될 수밖에 없고 어떤 경우 좌파성 이념으로 매도되기까지 한다. 시장 진출이나 업무 영역의 확장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이해가 상충하면 보이지 않는 손 위에 놓인 자유시장의 경쟁 논리는 다른 논의나 타협의 여지를 누르는 무거운 바윗돌이 된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경제의 다양성과 혁신의 요람이고 일자리 창출의 어머니다. 중소기업은 공정 경쟁의 효소이며 국가 경제의 안정제다. 그래서 나라마다 중소기업의 사업 기회와 활동을 확장하려 한다. 일본은 1970년대 후반 이를 법제화했다. 우리나라는 2006년 대·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을 위한 법을 제정하고 동반 성장의 논의를 위한 회의체인 동반성장위원회를 2010년 설치해 가동하고 있다.
동반성장위는 국민 경제의 공동 번영을 위해 ‘사회적 넛지(social nudge)’를 하는 공기(共器)다. 대기업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중소기업의 요구를 전달하는 소통 공간이다. 혹 갈등이 생기는 경우 조사와 면담을 거쳐서 협의하는 장을 제공한다. 때로는 조정(調整)과 조정(調停)을 시도한다. 법률상의 중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없으나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한다. 최종 과정은 정부를 거친다. 나아가 위원회는 대기업도 바라고 있는 산업별 생태계의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의 유효한 방안을 제시하고 주시한다. 인간의 의지가 동태적으로 경합하는 경제나 기업 생태계에서는 지혜로운 제3자의 넛지가 긍정의 결과를 초래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밀림의 생태계와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반성장위의 별은 보이지 않는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