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분 짜낸 바다의 기적…이곳, 여의도 7배 '정원도시' 꿈꾼다

2024-10-02

세상사가 너무 크게 변했을 때 흔히 쓰는 고사가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문자 그대로의 풀이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는 뜻이다. 밭이 바다가 됐으니 이만한 개벽이 또 있을까. 그런데 전남 해남 영산강 하구에 가면 상전벽해의 정반대 버전이 버젓이 실재한다. 바다가 땅이 됐고, 그 땅이 풀과 나무 그득한 수목원으로 거듭났다. 가위 기적의 땅이라 할 만한 이 수목원의 이름은 ‘산이정원’. 바다가 산이 되고 산이 다시 정원이 되어 산이정원이 됐다. 바다를 메울 때부터 정원이 들어설 때까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무릇 명품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땅의 역사

바다를 메워 국토를 넓히자는 발상은 1970년대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뜻이 워낙 강경했다. 하여 영산강 하구에 둑을 세워 강물을 막았다. 이른바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된 건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뒤인 1981년 12월이었다. 둑에 막혀 바다에 섞이지 못한 영산강은 이후 서서히 말라 갔다. 이윽고 강이 바닥을 드러내자 땅이, 아니 갯벌이 펼쳐졌다.

염기 밴 땅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애초에는 논밭을 기대했으나 풀 한 포기도 오롯이 자라지 못했다. 그렇게 긴 세월 방치됐던 영산강 하구 갯벌을 다시 주목한 건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허허벌판에 도시를 건설하고 싶었다. 그 꿈 같은 사업의 이름이 ‘서남해안기업도시’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07년. 마침내 서남해안기업도시 사업이 첫 삽을 떴다. 전라남도·한국관광공사·보성그룹 등 민·관이 협력한 결과다. 여기서 눈여겨볼 건 한국관광공사다. 관광당국이 국토건설사업에 끼어든 이유가 있다. 서남해안기업도시는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추구한다. 아파트로 빼곡한 여느 신도시와 달리 휴양과 레저를 즐기는 미래형 생활공간을 도모하다 보니 관광당국이 사업 주체로 들어와야 했다.

이렇게 해서 국내 최초의 관광레저형 기업도시가 탄생했다. 브랜드도 완성했다. 솔라시도(Solaseado).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들인 간척지라는 뜻이 매겨졌다. 솔라시도의 면적은 20.6㎢(632만 평)에 이른다. 여의도 면적(2.9㎢)의 약 7배 크기다. 영산호와 금호호 사이 끝이 보이지 않는 간척지를 솔라시도가 다 쓴다. 이 솔라시도 안에 산이정원이 있다.

날씨 사냥꾼

솔라시도는 ‘신환경’ 미래 도시를 꿈꾼다. 친환경이 아니라 신환경이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고 자연과 어울리는 스마트 도시가 솔라시도가 그리는 도시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정원이다. 도시에 정원을 들인 ‘도시정원’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정원으로 꾸민 ‘정원도시’ 수준이 되어야 한다. 솔라시도는 정원도시를 만들 주인공을 찾아다녔다. 끝내 인연이 닿은 사람이 이병철(56) 아영 대표다. 아영은 솔라시도의 정원 사업을 총괄하는 회사로, 산이정원을 운영한다.

이병철 대표는 국내 수목원·식물원 분야의 장인이다. 이 대표의 전 직장이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이다. 아침고요수목원을 설립한 한상경(74) 원장의 첫 대학원 제자가 이 대표다. 이 대표는 스승과 함께 가평의 깊은 계곡에서 손수 수목원을 일궜다. 1994년 수목원 개장을 준비할 때부터 2019년 해남으로 내려올 때까지 그는 아침고요수목원을 떠난 적이 없다. 평생 아침고요수목원을 지킬 것 같았던 그가 땅끝 해남 간척지까지 내려와 나무를 심고 있다.

아이들은 정원사를 ‘날씨 사냥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햇빛을 알고 바람을 헤아려야 풀과 나무를 옳게 심고 가꿀 수 있어서다. 이 대표도 ‘날씨 사냥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산이정원에 모두 12개의 주제 정원을 뒀는데, 그중 하나를 ‘날씨 사냥꾼의 정원’으로 정한 까닭이다. 날씨 사냥꾼의 정원에서는 산이정원의 날씨를 표현한 용구름언덕, 날씨를 주관한다는 ‘청룡’ 조형물 등을 설치해 아이들이 뛰어놀게끔 했다.

약속의 땅

산이정원의 주소는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다. 사실 산이정원이란 이름은 주소에서 비롯됐다. 구성리에서는 ‘구성구경(九星九景)’이라 하여 9개 정원의 컨셉을 가져왔다. 솔라시도에는 모두 9개의 정원이 들어설 예정으로, 지난 5월 개장한 산이정원이 솔라시도의 두 번째 정원이다.

2021년 전국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단지에 설치한 태양의 정원이 솔라시도의 첫 정원이다. 전체 50만 평(약 1.6㎢) 면적의 발전단지 한복판 5만 평(약 16만5000㎡) 땅에 태양을 상징하는 원형 정원을 들였다. 태양의 정원이 솔라시도의 심장을 의미한다면, 산이정원은 솔라시도의 얼굴이다. 솔라시도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정원으로 온 가족이 즐기는 자연 공간으로 꾸몄다.

산이정원은 미완성 수목원이다. 전체 11만 평(약 36만4000㎡) 면적 중 5만 평 정도만 먼저 개장했다. 아침고요수목원과 다른 점은 밀도와 채도다. 좁은 계곡에 꽃과 나무를 빽빽이 심은 아침고요수목원과 달리 산이정원은 광활한 간척지에 풀과 나무가 자연스레 어울려 있다. 채도도 산이정원이 낮다. 바람과 염기에 강한 식물을 골라 심다 보니 아무래도 색깔을 우선할 수 없었다. 한해살이 식물을 일부러 안 심은 것도 채도가 낮아진 이유다. “화려한 꽃을 감상하려는 인간의 욕심을 위해 식물을 1년만 키우고 버리는 짓은 삼가겠다”는 게 이 대표가 밝힌 이유다.

산이정원에서 가장 의미 있는 주제원은 ‘약속의 숲’이다. 탄소 중립과 생물종 다양성 보존 약속을 위해 지역주민과 함께 2050주의 탄소 저감 수종을 심은 공간이다. 잎이 넓어 탄소를 많이 흡수하는 상록수, 그러니까 붉가시나무·팽나무·비파나무·대나무 등을 심고, 약속의 숲 안에 야외 결혼식이 가능한 ‘서약의 정원’을 꾸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약속이 결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산이정원에서 열리는 ‘나비프로젝트’도 환경을 주제로 한 예술제다. 이 대표는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수목원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미래를 생각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약의 정원에 올라서면 산이정원이 훤히 내다보인다. 서약의 정원에서 이 대표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 정원이 다 바다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긴 노동 끝내고 내뱉는 한숨처럼 느껴졌다.

산이정원 이용정보

산이정원으로 가는 대중교통은 아직 마땅치 않다. 목포역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다. 입장료 어른 1만원(주말). 미술관으로 등록된 식물원이어서 정원 곳곳에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의 도슨트 투어처럼 하루 2번 산이정원 스토리텔링 투어를 운영한다. 이병철 대표가 직접 해설에 나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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