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소리 나는 부의 대물림…'온실속 화초 테스트'도 등장돌잡이 전부터 억대 자산가 vs. 끼니 걱정하는 아이들"저성장 시대에 신분 고착화 심화"…"패러다임 전환 필요"
'억'소리 나는 부의 대물림…'온실속 화초 테스트'도 등장돌잡이 전부터 억대 자산가 vs.
끼니 걱정하는 아이들"저성장 시대에 신분 고착화 심화"…"패러다임 전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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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살면서 알바(아르바이트) 해본 적 없음 ▲의식주 걱정해 본 적 없음 ▲서울 토박이 ▲공군, 카투사 출신 ▲일반고 출신 아님 ▲공부할 때 돈 걱정을 한 적이 없음….
최근 연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온실 속 화초 테스트'의 항목들이다.
작성자는 "전부 다 해당하면 온실 속 화초가 맞고, 절반 이상 해당하면 온실 속 화초일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타고난 경제적 여건에 따라 학교, 일터, 군대 등에서 삶의 경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짚어냈다는 반응과 함께 '단 한 개도 해당 안 되는 나는 화초가 아니라 시베리아 잡초다' 등 불편한 심경을 토로한 댓글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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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따르면 평생 손대기 어려운 규모의 자산을 태어나자마자 물려받는 일명 '금수저'는 늘어나는 추세다.
28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성년자의 5억원 이상 고액 예·적금 계좌 수는 145개로 전년 말(136개)보다 증가했다.
145개 계좌의 총잔액은 1천502억원이었다.
계좌당 평균적으로 약 10억원이 들어있는 셈이다.
145개 계좌 중 소유자가 0세인 계좌는 무려 7개였다.
돌잡이를 하기 전부터 억대 자산가가 된 것이다.
5억원은 일반 국민이 약 12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했을 때 모을 수 있는 돈이다.
2022년 귀속 근로소득자 1인당 평균 연봉은 4천214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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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자산을 대물림받은 미성년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작년 9월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이 확보한 통계청 '주택소유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주택 소유자 중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2만5천933명으로, 전년(2만5천776명)보다 0.6% 늘었다.
한창 경제 활동을 하는 30대(-6.4%), 40대(-0.3%) 등은 주택 소유자가 줄어든 반면, 미성년에서는 오히려 소폭 늘어난 것이다.
같은 해 2주택 이상 소유한 미성년 다주택자는 1천516명으로, 전년(1천410명)보다 7.5% 증가했다.
사업장을 물려받아 억대 연봉을 받는 미성년자도 있었다.
진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미성년 사업장 대표자는 전국에 360명 있다.
이들 중 연봉 1억원을 초과하는 미성년자는 20명에 달했다.
연령별로 보면 11∼15세가 12명, 16∼17세 5명, 6∼10세 2명, 5세 이하 1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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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예·적금 계좌가 있기는커녕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아이들의 비중은 증가세다.
보건복지부 아동 급식 지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8세 미만 아동 중 급식 지원 대상자는 27만2천400명으로, 전체 아동 수(687만6천여명)의 4%다.
2015년 급식지원 대상자 비율(3.9%)보다 소폭 증가했다.
급식 지원 대상자는 보호자의 양육능력이 미약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끼니를 거르거나, 먹는다 해도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경우다.
지자체별로 지역 실정, 아동의 여건에 따라 방학·학기 중 중·석식을 제공한 아동 수를 집계한 결과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전국 51개 협력기관과 함께 저소득 가정 464가구, 아동 898명을 포함해 총 1천524명에게 밀키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측은 "식사지원사업은 규모를 설정하고 난 다음에 전국 센터에서 각 지역 복지관, 시설에서 신청받아 접수내용을 바탕으로 선정해서 배부한다"며 "우리 말고 다른 NGO에서도 유사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교육에도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2023년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조2천억원 늘며 3년 연속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가구 소득 구간별로 보면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도 많았다.
월평균 가구 소득이 가장 높은 '800만원 이상' 구간의 사교육비 지출이 67만1천원으로 가장 높았고, 월평균 소득 '3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은 18만3천원으로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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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성장 시대가 계속될수록 신분 고착화는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젊은 세대의 취업이 어려워지고 부의 축적 속도가 달라지면서 신분 차이가 점점 벌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 산업은 이미 일정 수준의 피크에 다다라 더 성장이 어렵고 자동화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며 "젊은 세대가 새로운 산업을 육성·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과도한 대입 경쟁 구조, 사교육 강화, 저출산, 저성장이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본창 사단법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상위권 학생 변별을 명목으로 경쟁 체제를 개혁하지 못하는 동안 출산율은 떨어지고 사교육비 부담으로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청년들은 늘어나며 경제 성장은 더뎌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극소수의 상위권 학생을 위해 지금과 같은 경쟁·입시 체제를 유지하다 초가삼간 다 태우게 생겼다"고 했다.
winkite@yna.co.kr(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