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달장애인 승윤이는 자신의 표현대로 “승부욕이 활활 타오르는 사나이”다. 야구 시합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승윤이는 집에서 태권도 학원까지 걸어가는 15분 동안 “내일은 아웃당하지 않고 안타를 치겠다”라고 연거푸 말했다. 날씨가 좋다는 말에 “이제 가을이 왔다”고 동문서답하다가도 “내일은 진짜 안타 치려고요” 하며 금세 다시 결연해졌다.
이승윤군(14)이 속해있는 ‘E.T(East Tigers) 야구단’은 발달장애인 청소년으로 구성된 야구단이다. 2016년 기업 후원 사업으로 광주광역시 동구 장애인복지관이 운영을 시작했다. 후원 사업이 종료되며 해체 위기에 놓였지만 고향사랑기부제 기금을 지원받아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올해도 훈련비 마련과 연습장 건립을 위해 고향사랑기부제 지정 기부를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광주동구유소년 야구단과의 시합이 있었다. 오랜만의 시합이라 너른 운동장이 어색했다. 빨간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아이들은 초록 잔디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몸을 풀었다. 긴장한 손은 공을 자꾸 놓쳤고, 머리는 게임의 규칙을 자꾸 잊었다. 투수, 타자 나누지 않고 모두 한 번씩은 공을 던지고 타석에 설 수 있게 순서가 짜였다.




공을 멀뚱멀뚱 보기만 하다 놓치기도, 배트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퇴장하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아웃당하고 아쉬워하며 들어오는 선수에게 “괜찮아, 즐기면서 하면 되지”라고 큰 소리로 서로를 북돋웠다. 안타를 치면 줄 서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타석에 서지 못할 때도 더그아웃 네트에 꼭 붙어 경기를 지켜봤다. 넓은 그라운드에서 아이들은 던지고, 휘두르고, 뛰었다. 김철수군(15)은 “공을 기다릴 때 떨렸는데, 뛸 때는 짜릿했다”며 “땅볼로 진루해서 살짝 아쉽지만 다음에는 더 만족스러운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몇 대 몇으로 이기고 졌는지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잘했는지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7년째 야구단을 지도하고 있는 임방현 감독은 “처음에는 아이들이 공을 친 다음에 뛰어야 한다는 걸 몰라서 데리고 같이 뛰기도 했다”고 했다. 임 감독은 “몇년 동안 보다 보니 아이들이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보인다”며 “저한테는 조금이어도 아이들한테는 엄청나게 큰 성장”이라고 했다. 인사도 안 하고 말을 시켜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던 아이들은 팀플레이가 기본인 야구를 하며 변했다. 작은 공을 세심하게 컨트롤하는 것, 복잡한 야구 규칙을 익히는 것뿐 아니라 서로 돕는 법을 배웠다. 만나면 인사하기, 연습한 공은 다 같이 줍기, 어려울 때는 물어보고 도와주기….


평소 타인과 교류가 많지 않은 아이들은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가장 많이 웃고 떠들썩하다. 공을 던져 야구 배트를 쓰러트리는 훈련은 마치 게임 같았다. 못 맞히면 아쉬워서, 맞히면 신나서 아이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매주 한 번 아이들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모인다. 복지관에서 다 함께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의 연습장으로 간다. 줄을 맞춰 뛰고, 쉬는 시간에는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고, 연습이 끝나면 간식을 먹는다. 다음 달에 있을 시합을 생각하며 어떤 꿈을 같이 꾼다. ‘같은 팀이니까’ 그렇게 한다.
아이들은 왜 야구에 열광할까. 승윤은 야구의 매력이 “짜릿한 홈런”이라고 말했고, 철수는 “역전될 때”라고 했다. 꽤 자주 속수무책으로 지지만 지는 경기에서도 아이들은 배운다. 다음 시합 때는 꼭 안타를 치는 꿈을 꾸며 아이들은 잠이 든다. 자고 일어나면 아이들은 기어이 조금 더 자란다. 엄마 아빠와 친구, 선생님과 이웃들도 아이들과 함께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