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乙巳年) 새해에도 국내 정치가 극도로 불안한 가도를 달리고 있는 와중에, 코스피 지수는 5% 가까이 오르며 양호한 흐름을 탔습니다. 주가가 역사적인 저점을 다다랐다는 인식에 저가 매수세가 유입된 영향으로 보이는데요. 지난해 금융 당국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계획)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선보였지만, 주가는 지지부진했던 터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치부심하던 당국은 최근 증시 부양을 위해 또 한번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이른바 ‘좀비 기업’ 퇴출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인데요.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당국의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이것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시가총액·매출액 상폐 기준 등 최대 10배 강화
지난 21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자본시장연구원 등은 ‘IPO 제도 개선 방안’과 ‘상장폐지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증시 저평가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좀비기업을 대거 퇴출하기 위해 시가총액 등 상장 요건을 최대 10배까지 강화한다는 골자입니다. 공모가를 부풀린 뒤 상장 직후 매도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 의무 보유를 약속한 기관투자가에 최대 40%까지 공모주를 우선 배정하는 등 기업공개(IPO) 시장도 손보기로 했습니다. 증시에 입성하기 위한 입구는 좁히고 나가는 출구는 넓혀 시장 전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복안이죠.
구체적으로 보면 코스피 기업의 상장폐지 기준 중 하나인 시가총액 요건을 현행 50억 원에서 2026년 200억 원, 2027년 300억 원, 2028년 500억 원으로 10배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코스닥은 현행 40억 원에서 2028년 300억 원으로 단계적으로 높인다는 계획입니다. 시가총액 요건은 대상 기업이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는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인 만큼 이르면 내년 2월 중 시가총액 200억 원 이하 기업은 즉시 상장폐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또 다른 상장폐지 요건인 매출액 기준은 코스피의 경우 50억 원에서 300억 원, 코스닥은 3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높입니다. 다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데 매출액이 낮은 기업 특성을 고려해 시가총액이 1000억 원(코스닥 600억 원) 이상이면 매출액 미달 상장폐지 조건은 적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금융위는 금액 기준은 미국 등 주요국 수준을 참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2회 연속 감사 의견이 미달되면 즉시 상장폐지하고, 코스피·코스닥·코넥스로 이뤄진 주식시장 체계를 재편하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퇴출 기간도 대폭 단축…200개 기업 상폐될 수도
이 같은 조치는 단계적 상향 조정이 모두 마무리될 될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코스피 788개사 중 62개사(7.9%), 코스닥 1530개사 중 137개사(8.9%) 등 199개사가 상장폐지될 만큼 파격적입니다. 앞으로 3~4년 동안 기업의 주가 부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시장 여건이 악화되면 퇴출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죠.
이뿐만 아니라 당국은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 시장에서 최대한 빠르게 퇴출시킨다는 계획입니다. 최근 5년 동안 상장폐지된 사례 71건 중 62건은 사유 발생부터 최종 퇴출까지 1년 이상이 걸렸는데, 앞으로는 이의 신청 시 코스닥 개선 기간은 현행 1년을 유지하되 코스피는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기로 했습니다. 실질 심사는 코스피에서 최대 4년(2+2)에서 최대 2년(1+1), 코스닥에서는 최대 2년에서 최대 1.5년으로 축소합니다. 코스닥 실질 심사의 경우에는 2심과 3심을 합쳐 2심제로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더해 1심 결과가 명확하면 추가 개선 기간은 부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편 당국은 올해 7월부터 기관투자가 배정 물량의 30~40% 이상을 의무보유 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하는 등 IPO 제도 개선도 추진합니다. 기관이 상장 직후 공모주를 매도해 주가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상장폐지 제도 개선은 법률 개정 없이 한국거래소 세칙·규정만 바꿔 당국 의결을 거치면 되는 만큼 당국은 이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방침입니다. 올해 상반기 중 개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죠. 시가총액 미달은 내년부터, 매출액 미달은 내후년부터 강화됩니다.
“상장사 많은데 시총 작아” vs “대응할 시간 충분히 줘야”
당국이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려는 것은 상장은 쉬운데 퇴출은 어려운 구조가 국내 증시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지난해 말 국내 상장기업 시가총액은 2288조 원으로 미국(9경 968조 원) 대비 4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상장기업 수는 2478개사로 미국(4044개사)의 60% 수준에 달합니다. 한국보다 시가총액이 1000조 원 이상 많은 대만(3492조 원)보다도 상장사가 732개나 많죠.
다만 일각에서는 상장사들이 대응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일부 상장사는 최근 3년 동안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적이 없는 데다 감사 의견에 문제가 없고 배당마저 꾸준히 이어가고 있지만 시가총액 기준에는 못 미치는 ‘예외 사례’도 있다는 것이죠. 김준만 코스닥협회 상무는 “매출이 700억 원대라도 시장 관심을 받지 못해 시가총액이 300억 원에 못 미치는 건실한 기업도 퇴출될 수 있다”며 “시가총액 상장폐지라도 이의 신청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국내 증시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이 같은 ‘동전주’들 때문보다는, 중복 상장 문제,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유상증자, 주식 분할·합병 남용 등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애초 시총이 작은 기업이 코스피나 코스닥 지수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지 의문이라는 것이죠.
정부도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 보완책을 마련했습니다. 상장폐지 기업의 비상장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을 활용하고 상장폐지 사유로 거래정지될 경우 투자자에 대한 정보 제공을 확대하도록 개선 계획의 주요 내용을 공시하도록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