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날, 내 입맛에 맞게 만드는 별미
고소한 계란 사이로 툭툭 튀는 고춧가루가 한 번씩 손 들어주는 맛

어릴 땐 이게 정석인 줄 알았다. 빨간 계란찜. 할아버지가 식탁의 주인이던 어린이 시절, 유독 비린내를 싫어하던 할아버지는 고춧가루나 후추를 어느 음식에든 요리조리 넣어 냄새를 마스킹하는 재주가 탁월하셨는데, 계란찜에 고춧가루가 들어있지 않으면 그 위에 무심히 툭툭. 그 다음 숟가락으로 슥 떠가시곤 했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입맛에 맞춰 엄마는 언제나 계란찜을 불에 올릴 때 고춧가루 한 움큼 둘러 휘휘 익혀냈고, 뚜껑을 열어보면 노오란 찜 대신 울긋불긋 단풍이 오른 계란찜이 있었다. 중탕한 계란찜 전용 ‘스뎅 그릇’을 행주로 감싸 쥐고 식탁에 툭 내려놓으면 비린내 대신 고춧가루의 날내가 훅 끼쳐오던 그것.
외식이 잦고, 배달도 잦고, 신혼 초에는 계란찜 만드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고. 주변을 돌아보면 온통 흰자 섞인 몽글몽글하고 허연 계란찜들뿐이었다. 그릇 위로 부풀어 오른 폭신한 것이 좋다, 물이 쫙 빠져 납작하고 단단한 것이 좋다 정도의 품평 말고는 나름의 취향 찾기가 어려워 그저 그런대로 먹어왔는데.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날, 마음마저 움직이기 싫은 날, 문득 생각이 나버렸다. 촉촉하고 담백한 것 대신 칼칼하고 까랑까랑한 찜을 만들어 보리라. 몸도 제 양껏 안 풀리고 속도 내 맘대로 안 풀리는 그런 날, 꼬박 부엌에 붙어 서서 이것 썰고, 저것 굽고, 불 올리고, 렌지 돌리는 그 모든 것이 귀찮아진 날,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대부분 그렇지 않아서 몰랐던 우리 집 입맛으로, 어릴 때부터 길들어 온 내 취향으로.

고춧가루를 달걀물에 같이 섞지 않고, 타지 않도록 먼저 약불로 녹진하게 볶아 쓰면 날내가 달아난다. 그 위에 넉넉히 풀어 연두로 간 맞춘 달걀물을 붓고 후룩 저어 준 다음 뚜껑 덮고 중불로 은근히 끓여주면 끝. 송송 썬 실파 등을 올려 색감도 식감도 입히면, 아 이거 내 취향이 맞다.
자꾸 뒤적여도 슴슴하기만 한 계란찜에 재미를 더한 맛. 고소한 계란 사이로 툭툭 튀는 고춧가루가 한 번씩 손을 들어주는 맛. 그 옛날 우리 집 식탁이 떠오르는 맛. 먹다 보니 그새 또 요리에 진심인 나를 발견하고 만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는데, 고거 조금 움직였다고 기운이 난다. 아니, 먹고 싶은 걸 생각해 바로 요리할 줄 아는 근사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 속이 안 풀릴 땐 문득 떠오른 내 취향을 고춧가루 뿌리듯 요리에 얹으면 다 된다. 기분도 같이 들뜨는 ‘매콤 계란찜’ 상세레시피는 아래 새미네부엌 사이트 참고.

✅안 풀릴 땐 고춧가루를 뿌려, ‘매콤 계란찜’ 재료
주재료 = 달걀 5개 (250g), 굵은 고춧가루 1스푼 (10g), 포도씨유 2스푼 (20g), 물 3컵 (600ml)
부재료 = 실파 혹은 쪽파 1줄기 (10g)
양념 = 요리에센스 연두진 4스푼 (40g)
✅ 안 풀릴 땐 고춧가루를 뿌려, ‘매콤 계란찜’ 만들기
1. 달걀에 물과 연두진을 넣고 잘 섞어요.
2. 실파 혹은 쪽파는 송송 썰어요.
3. 예열 팬에 오일을 두르고 굵은 고춧가루를 넣어 약불에서 20~30초간 타지 않게 볶아요.
4. 중불로 올리고 달걀물을 부어 잘 섞은 후 뚜껑을 닫고 5분간 익혀요.
5. 마지막에 송송 썰어둔 ②를 뿌려주면 완성!
■자료 출처: 누구나 쉽고, 맛있고, 건강하게! 요리가 즐거워지는 샘표 ‘새미네부엌’ 요리법연구소(www.semie.cooking/recipe-lab)
<‘새미네부엌’ 요리법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