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앞으로는 아이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학원 차를 기다리다 ‘지금 몇 시예요?’ 하고 물으러 들어오는 아이들, 책장의 그림책 표지에 홀려 엄마 손을 잡아끌다 저지당하곤 못내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 길 건너에 친구를 두고 홀로 책방에 들어와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금세 ‘다시 올게요.’ 하고 나가는 아이들도 있다. 내가 책방을 연 이후 가장 기다리는 손님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와 자기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아이들이다.
어릴 적 정읍 시내에는 ‘개미음악사’라는 음반 판매점이 있었다. 시내에서 집에 오려면 개미음악사 앞에서 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늘 가게 쇼윈도에 붙은 포스터들을 살피거나, 새 음반의 출시 예정일이 전지에 빼곡이 쓰인 목록을 읽었다. 이름을 알고 있는 음악가의 소식은 기뻤고, 모르는 음악가의 소식이 쓰여 있으면 가게에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샘플로 청음을 할 수 있는 음반은 청음도 해 보았다. 지금도 좋아하는 음악가의 새 앨범을 기다리는 마음은 비슷하지만 음악을 손쉽게 얻을 수 없던 그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 출시를 앞둔 몇일은 개미음악사의 문턱이 닳도록 오가며 출시일을 확인했다. 문을 빼꼼 열고 아주머니께 ‘OO 앨범 언제 나와요?’ 물어보기 바빴다. 라디오나 pc통신을 통해 알게된 음악이 생기면 ‘이런 앨범을 구할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의 음악 취향은 이 시기에 개미음악사에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올해 처음으로 친구들과 손을 잡고 책방에 와서 책을 고르는 아이들을 만났다. 책방을 열고 기다린지 꼭 3년 만이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찾는 책이 없어도 좋고, 제목을 알아두었다가 인터넷으로 구매해도 좋다. 내가 개미음악사에 드나들며 알게 된 음악가들과 앨범을 떠올리면 책방에서 아이들이 만날 작가들과 책들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아이들이 수줍게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 한참을 재잘거리며 고른 책들은 그들의 인생 어딘가에 조그마한 점처럼 남아 있기도 할 것이고, 가늘고 긴 선 혹은 굵고 깊은 고랑이 될 수도 있다. 책방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작은 도시일수록 직접 만지고 고를 수 있는 취향의 가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정읍에 다시 왔을 때, 개미음악사가 없어진 자리를 보며 들었던 헛헛한 기분이 책방의 앞날을 계획하는데 꽤 많은 동력이 되었다. 작은 도시에서 아이들이 취향을 충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테지만, 훗날 어디에 가서든 내가 살던 곳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취향을 채울 수 있는 가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 언제까지고 정읍의 아이들이 책방을 취향의 공간으로 추억할 수 있도록 열심히 갈고 닦고 벼려서 녹슬지 않아야지 했다.
사실 욕심껏 말하자면 지금은 부모님 손을 잡고 오지만 언젠가는 혼자서 책방에 올 책방 키즈들, 타지에 있다가 본가에 오면 들르는 훌쩍 큰 아이들, 이곳을 오아시스처럼 찾는 어른들 모두를 기다린다. 모두들 정읍에서 보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그치지 않고 작게 반짝이며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을테니 이곳에서 만난 작가들과 책들을 각자의 점으로, 선으로, 고랑으로 만들어 계속해서 이어가기를 바란다. 그만한 책방지기의 보람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유새롬 작은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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