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문학과 글

2024-10-28

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

[동양뉴스] 두해 전부터 인가 앞마당 조경(造景)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좁은 시골 도로 옆 주택에 둥지를 품고 있기에 동네 분들의 관심도 한몫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추나무와 화살나무의 잔가지 정리를 끝내고 상쾌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며 내심 흡족해한다.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인간의 욕망(欲望)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시골구석 새벽녘 저수지 옆 물안개를 헤쳐나간다. 늘 가던 정자에 도착하여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릴 수 있는 모든 색깔을 대보았지만 번번히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스스로 그리다 만 삶에 한 조각에 등불을 켜고 싶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믿음을 가진 자로서 땅 위에 모든 일에 대해 정녕 하늘은 관심을 두고 있는지 의구심(疑懼心)만 생긴다. 아직 그리다 만 삶은 그저 저수지 물결을 바라보니 울렁거리며 현기증을 느낀다.

우리는 때때로 추억 속에 잠긴 세월의 흐름을 감지하며 정녕 보고 싶은 곳을 찾아 방황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문학적 감수성이 없다. 창문을 열고 바람 한 결을 느낄 때면 그저 누군가 나의 마음을 달래주겠지 하며 수 많은 상념 속에 줄 대어진 잣대로 글을 쓰곤 하였다. 누군가 건네준 달콤한 말이 있다면 소중히 담아 표현하곤 했던 게 전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떠다니는 문학의 길잡이는 무엇일까. 이별을 슬퍼하겠지만 무작정 따라온 길처럼 한때 시선에 취하며 걸어왔던 길, 과연 누구를 사랑하고 보듬어야 할까. 슬픔을 멀리하고 그리움과 손잡던 시절, 기다림은 눈물로 되어 흐르고 멀리 사라져가는 눈동자의 작은 눈망울에 숨을 멈추었던 시절이 있었다. 낙엽 지던 감성에 사로잡힌 채 우두커니 담장에 기대어 서서 가을 하늘 수놓은 철 세의 울음소리에 몰래 가슴속 희열을 느끼던 그날. 평소처럼 눈을 뜨니 떠들썩한 세상의 반가운 소식에 가슴이 설렌다. 문인의 한 사람으로 조용하면서 차분하게 그리고 덤덤히 이야기하는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을 청취하며 한권의 책을 신청한다.

문학은 죽고 글은 살아 있다. 우선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필자 시각(視覺)임을 밝힌다. 문학이란 글을 떠나 뿌리를 내릴 수 없듯이 어쩌면 그녀 또한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 문단의 원로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고을의 산천과 백성이 일구어내는 삶 속에서 어머니의 말과 글을 찾아 잠시나마 갈증을 느끼며 헤매던 기억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도 문학의 현주소는 주어진 운명마저 버린 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문학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역사와 민족의 정서함양에도 필요한 것이기에 글로서 그 뿌리를 삼아야 할 때가 아닐까. 부끄러운 일이지만 종전 나는 그녀의 작품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는 많은 부분에서 결코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녀는 사회를 순수한 느낌 그대로 진정성 있는 글의 해석이라는 관점에서는 바라보지 않았을까.

서둘러 접해본 그의 글은 지난날의 기억을 붙잡고 몸부림치며 잊지 않으려 노력했음을 느낀다. 그가 품고 있던 글은 세월 속의 아픔을 저울질하고 홀로 걷던 그 길에서 문학은 죽고 글로 꽃을 피우며 살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스스로 문학과 글에 젖어 살아온 세월이라지만 무엇을 찾고자 이렇게 살아왔을까. 지난 세월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초롱불 아래 옛 향기를 머금고 써 내려간 그녀의 진실은 왜곡되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승화(昇華)된 것이리라. 이참에 한 번쯤은 세상과 주위를 둘러보아야겠다.

얼마 전 칼럼을 쓰며 한 말이 있다. 글을 통하여 그 의미가 전달될 때 비로소 우리가 다가서는 언어적 해석은 과거에 인식(認識) 된 삶의 모습이 현재의 나의 모습에 투영되어 수많은 이해관계로 이루어진다. 이는 끊임없는 교감(交感)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평론가가 아니다 그저 나의 주간적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낫 시골의 무명 시인에 불과하다 하지만 글은 우리의 인생이며 그 시대의 사회상을 대변하는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의 인과 관계에 있어 글은 역사의 그늘 속에 담기어진 시대상(時代相)의 애환을 반영한 것이리라. 끝으로 짧게나마 진심 어린 마음에 한국문학의 한 획을 장식한 그녀 한강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외부 칼럼은 동양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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