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파와 개혁파로 양분된 가톨릭계를 균형있게 이끌 중도파로 기대를 모았던 레오 14세 교황이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소수자 포용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1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성소수자(LGBTQ)를 위한 사목활동을 펼치는미국인 제임스 마틴 신부를 만나 30분간 대화했다.

마틴 신부는 알현 후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레오 14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용 정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며 그의 사목 활동을 격려했다고 전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들었던 것과 같은 메시지를 레오 14세 교황에게서 들었다”며 “그것은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자 하는 염원”이라고 말했다.
이번 만남은 레오 14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이어가겠다는 중요한 신호로 해석된다.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으로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내 진보 성향 개혁파에 속했다.
그는 2013년 즉위 직후 동성애 사제에 대한 질문에 “내가 누구를 정죄하리오”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오랫동안 교회에서 소외당했던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발 더 나아가 동성애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승인하는 등 교회의 문을 더 넓히기 위해 애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 재위 기간 자신과 같은 예수회 소속인 마틴 신부를 여러 차례 만났고, 그를 교황청 공보부 자문위원으로 임명하는 등 깊은 연대를 맺어왔다.
올해 5월 즉위한 레오 14세 교황에 대해서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가 과거 추기경 시절 성소수자의 생활 방식을 비판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보수파들은 레오 14세 교황이 성소수자 포용 정책을 철회하고, 가톨릭 교리의 전통적인 입장을 더욱 엄격히 고수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마틴 신부와 만남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교황청이 이번 만남 사실을 공개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보수파는 곧바로 반발했다. 캐나다의 보수 가톨릭 매체 라이프사이트뉴스의 공동 설립자 존-헨리 웨스턴은 이번 알현을 “악몽 같은 시나리오”라고 비판했다. 가톨릭 소셜미디어(SNS)에서 활동하는 팟캐스터 테일러 마셜은 엑스(X·옛 트위터)에 별다른 논평 없이 레오 14세 교황과 마틴 신부가 만난 사진을 올렸다.
반면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들을 지지하는 단체인 뉴 웨이스 미니스트리(New Ways Ministry)는 “레오 14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용 모델을 지지한다는 강력한 신호”라며 “과거의 억압적인 접근 방식은 이제 (지나간)역사가 됐다”고 환영했다.
이번 만남은 이탈리아 성소수자 가톨릭 단체가 주관하는 바티칸 희년 순례를 앞두고 이뤄졌다.
오는 5∼6일 이틀간 진행되는 이번 순례는 교황청의 공식 후원은 아니지만, 교황청의 희년 행사 일정에 포함돼 있으며 이탈리아 주교회의 고위 관계자가 집전하는 미사도 예정돼 있어 교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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