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살처분 요건 완화로 대상이 줄었는데도 살처분된 산란계 수가 전년 대비 4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들어서도 야생조류에서 고병원성 AI 항원이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어 고병원성 AI 추가 발생에 따른 산란계 농장의 살처분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세종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추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2024~2025년 동절기 산란계 농장의 고병원성 AI 발생 건수는 지난해 10월29일(강원 동해) 최초 발생 이후 총 18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살처분 산란계 수는 366만8000마리로, 전년(2023~2024년 동절기) 266만8000마리보다 37.5% 늘었다.

방역 당국은 AI가 발생하면 해당 농장을 기준으로 방역대를 설정한 후 닭과 오리 등 가금농장의 모든 축종을 대상으로 예방적 살처분 조치를 하고 있다. 예방적 살처분 범위가 AI 발생 농장 반경 3㎞로 광범위했던 2020~2021년엔 살처분 산란계 수가 1700만마리에 달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산란계 수 감소에 따른 계란값 상승 등 부작용이 커지자 방역 당국은 살처분 방역대를 발생 농장 반경 1㎞로 좁혔고 이어 500m 이내로 다시 줄였다. 그 결과 살처분 산란계 수는 2022~2023년엔 286만마리, 2023~2024년엔 267만마리 수준으로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10월부터는 반경 500m 이내라도 위험도가 낮은 농장은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규제가 또다시 완화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거 전염병 발생 정보, 철새 분포, 차량 이동 현황, 농장 방역 상황과 같은 데이터를 활용해 위험도를 평가하는 등 과학 방역 수준이 향상되면서 방역 조치를 유연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처분 요건이 완화됐는데도 살처분 산란계 수가 되레 늘어난 것은 이번 동절기 고병원성 AI가 확산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다.
고병원성 AI 확산은 야생조류 증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겨울철새들이 한국에 더 많이, 더 오래 머물면서 분변이나 사체 등을 통해 가금농장에 고병원성 AI를 전파시키고 있다. 환경부의 겨울철새 도래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야생조류 수는 지난 1월 128만마리에서 2월 146만마리로 늘었다.
고병원성 AI는 향후에도 산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 고병원성 AI는 통상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유행하지만, 3월 들어서도 지난해(37만마리)보다 약 32% 많은 49만마리의 야생조류가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14일 사이에는 철새에서 3차례나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는 등 산란계 농장에 전파될 위험이 여전히 높다.
방역 당국은 살처분 산란계 수가 전년보다 늘었지만 향후 달걀 수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살처분 산란계 수는 전체 산란계(8067만마리) 사육 마리의 약 4.6%로,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