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합의 그 이후

2025-12-30

필자에게 2025년은 트럼프의 한국 경제 침탈에 저항하는 진보적 사회운동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오늘날 변화된 제국주의와 노동자 민중의 대안적 질서를 주제로 한 필자의 글과 말 또한 그와 같은 실천의 일환이었다. 공동 팩트시트와 양해각서로 모습을 드러낸 한·미 관세 합의 결과는 기실 충격적인 것이었다. 가령 미국이 지정한 1년짜리 사업에 한국이 100억달러를 투자한다면 이자율이 5%일 때 일차적인 회수 대상 원리금인 ‘간주배분액’은 원금 200억달러에 이자 10억달러를 더한 금액으로 정의된다. 이 210억달러가 전액 회수될 때까지 한국과 미국의 몫은 5 대 5다. 합계 2000억달러 규모의 한국 정부 투자에서 세후 현금흐름이 두 배 넘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한국으로서는 원금조차 건질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진실이 제대로 알려져 있는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실제 투자 사업은 현금 유출입이 복잡해 한·미 관세 합의 결과를 담은 현재의 양해각서만으로는 간주배분액 등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옳은 지적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계약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위에 제시한 수치 예처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때에만 이 계약이 얼마나 불평등한지 폭로할 수 있다. 적어도 진실을 가린 채, 그저 약소국인 우리로서는 억울하지만 나름 선방했고 중요한 건 이제부터라면서 덮고 넘어갈 일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이 나라의 위정자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굴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셈인가.

양해각서의 내용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은 이 각서 내용이 한국 사회에서 수용되는 태도이다. 혹자는 미국이라는 수출시장 없이 한국 경제에 대안이 있냐고 따진다. 실제로 외환위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거치면서 수요 독과점 미국에 대한 한국 경제의 의존은 심화되었다. 정부의 체계적인 산업 정책이 부재한 가운데 개별 기업한테 수출망 다변화가 쉬울 리 없다. 그 결과로 한국은 2010년 이후 주요 수출국 가운데 수출품목 집중도 지수 세계 1위, 수출시장 집중도 지수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가장 심하게 계란을 한 바구니로 모은 나라라는 뜻이다. 그만큼 국민 경제의 위험도 덩달아 커졌다.

예컨대 대표적인 제조업 도시 울산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이 중국을 뚜렷이 대체해 지금은 미국 비중이 압도적이다. 한·미 관세 합의로 향후 미국 의존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처럼 수출에 목매는 기존 관념은 한국 경제의 성장체제에 대한 그간의 경제학계에서의 실증 분석 결과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구조적 접근법으로 한국 경제의 소비 함수, 투자 함수, 순수출 함수를 추정하면 그 결론은, 노동에 유리한 분배를 통해 내수를 확충하고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편이 장기적으로 경제의 양적인 성장을 위해서조차 이롭다는 쪽이다. 예외적인 몇몇 연구만 그런 게 아니고 대다수 연구의 공통된 결론이 그렇다. 하지만 현실의 한국 자본주의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구체제 세력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마찬가지였다. 국내 유효수요를 제한하면서 성장에 필수적인 수요를 수출시장에서 확보해왔다. 수요 제약은 노동자 민중을 자본의 사슬 아래 묶어놓는 굴레로 작동해왔다.

2025년 한국의 트럼프 반대 운동은 새 정부가 ‘국익’을 기준으로 협상에 임할 것을 주장했다. 국가주의라는 진보 진영 내 비판에도 불구하고, 반제국주의 운동에서 국익은 미국 눈치 보지 말고 오직 민중을 위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용어였다. 그러나 같은 말도 정부한테는 그 뜻이 달랐다. 트럼프의 정치적 리스크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임에도 한국 정부가 협상 타결을 서둘렀던 배경에는, 아직은 미국 현지 생산능력이 불충분하기에 수출을 더 하고 싶고 그러려면 도요타와 경쟁하기 위해 관세 인하를 필요로 했던 현대차·기아 자본과, 업종 호황 사이클을 맞아 중국과의 경쟁을 돌파하고자 했던 조선업 대자본의 이윤 기회에 대한 고려가 작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정부에 국익이란 처음부터 그들 독점자본의 이익이었을 법하다. 수출 대기업부터 돈을 벌어야 경제 전반적으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과거의 성장 방정식에 대한 잘못된 고집 탓이다. 아니 그보다도, 미국과 재벌을 위해서는 민중의 삶이라도 저당 잡고 마는 이 체제의 한계 탓이다. 그리고 거기에 ‘중국 아니면 미국’식의 이분법이 더해진 결과가 바로 이번 한·미 관세 합의 결과에 대한 ‘선방론’이다. 철저히 재벌 체제에 복무하는 논리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