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에는 신뢰가 없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혁신경제 시대 산업 정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한국이 지향해야 할 혁신경제의 산업 정책은 모방 경제 시대와 구조적으로 완전히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이 만들어둔 혁신 성과에 기반해 ‘더 싸게, 더 좋게’ 만드는 모방 경제와 세상에 없던 시장을 새롭게 창출하는 혁신경제는 작동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영역이라도 전향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을 때 독보적인 기업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황 회장은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방 경제는 분명한 연구개발(R&D) 목표를 설정한 뒤 기업 간 경쟁을 시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혁신경제는 무엇을 개발할지, 언제 성과가 날지 모른다. 몰라도 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은 그동안 해온 R&D 지원 정책의 판을 근본적으로 흔들 것을 주문했다. 모방 경제에서는 기술의 개량 방향이 명확하므로 쉽게 R&D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사업화율이나 개발 성공률을 성과 지표로 삼았을 때 효과가 좋다. 반면 혁신경제는 R&D에 재정을 투입했다고 해서 성공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 당초 목표와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혁신이 창출될 수도 있다. 황 회장은 “모방 경제는 리스크 회피가 관건이라면 혁신경제의 비법은 과감한 리스크 극복”이라며 “가능성이 있는 영역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을 창출해줄 때 혁신이 자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공 가능성을 따지거나 단기적 사업성에 집착하지 말고 유망한 영역이라면 정부가 과감히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그동안 해온 세액공제 중심의 R&D 지원 정책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 황 회장의 의견이다. 황 회장은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보다 큰 금액을 투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느냐”며 “결국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스피드다. 그 스피드를 살릴 수 있는 지원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지원 정책은 선정 단계는 물론 집행 과정에서도 단계별로 보고서와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 이 같은 행정절차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이 산업통상부가 올해 처음 실시한 ‘국가첨단전략산업 소부장 중소·중견 투자 지원금’ 사업에 지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업은 국가전략산업을 중심으로 기술 개발을 위한 국내 신규 투자에 대해 재정을 직접 지원해준다. 중간 검증 단계 없이 사전에 제출한 투자 기간이 끝났을 때 실제 투자가 이행됐다는 점만 증명하면 돼 기업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황 회장은 “처음으로 정부가 세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태 본 지원 정책 중 가장 효율적”이라고 평가했다. 총 1200억 원 규모인 이번 사업에는 주성엔지니어링을 포함해 반도체·2차전지·바이오 소부장 기업 21곳이 선정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사업 선정 과정에서 접수된 프로젝트의 총규모가 1조 2000억 원에 달했다”며 “내년에는 국비 예산을 올해보다 늘릴 뿐 아니라 로봇·방산 분야까지 지원 분야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이번 지원 사업을 활용해 경기 용인시에 약 1000억 원을 들여 제2 R&D센터를 지을 방침이다. 황 회장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서 미세공정으로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드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며 “기존 방식이 단독주택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면 화합물 반도체는 50층, 100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만드는 혁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혁신경제를 자극하기 위해 ‘스타 기술자’ 육성 정책도 제안했다. 그는 “운동선수들은 수백억 원, 수천억 원을 받고 활동하는데 기술자들은 이직하면 욕을 먹는다”며 “세계 1등 기술자 육성 시스템을 만든 뒤 보호도 해주고 특혜도 줄 뿐 아니라 이직을 할 때 이적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적료가 공개 시장에서 책정되면 기술자를 보내고 받는 기업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데다 일종의 ‘연예인’ 효과가 생겨 인재들이 기술자를 지망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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