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미꾸라지 분투기

2024-09-22

우리나라는 미꾸라지 강국이다. 부안종개처럼 전세계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미꾸리과 참종개속이 6종이나 된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부분의 하천에는 다양한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서식한다(미꾸리 수염이 미꾸라지 것보다 짧지만 일반인은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미꾸라지는 생명력이 강하다. 우리네 음식사에서 차지하는 지위도 남다르다. 미꾸라지는 잡어로 대충 불리는 여느 민물고기와 달리 평소에도 한글 이름 대신 ‘추어’라는 한자 이름으로 불리는 특별한 어종이다. 민물고기나 바닷고기를 넣고 고춧가루 양념으로 맵게 끓인 어탕을 그저 ‘매운탕’이라고 하는 것과는 비교된다. 물고기의 개성을 집어삼키는 매운 양념 속에서도 추어탕은 살아남았다.

이뿐이 아니다. 추어탕은 뭐든 서울식으로 통일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의 일극화에 수백년을 맞서온 음식이다. 서울에서는 사골국물에 고추기름을 얹어서 추탕(서울에서 추어탕을 부르는 말)을 먹는다. 또 미꾸라지를 통으로 조리한다. 서울식 추어탕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산업화 전까지 우리나라 정·재계 인사들이 즐기던 음식으로까지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추어탕은 지금까지 맥없이 서울식으로 통일되지 않았다.

강원도에서는 고추장을 풀었고 호남에서는 미꾸라지를 갈아서 무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끓였다. 경상도는 더 특이하다. 맑게 끓여 체에 곱게 갈아 내린 뒤 배추 우거지를 넣고 먹었다. 경상도에서는 나무열매인 초피를 넣어서 비린내를 잡는 다른 지역과 달리 특이하게 방아잎을 넣는다. 평안도에서는 추어탕에 고수를 넣었다. 끓이는 방식뿐 아니라 비린내를 잡는 방법도 지역마다 뚜렷하게 달랐다.

서울의 의식주 문화를 따라 하기 바쁜 한국 현실에서, 추어탕처럼 뚜렷한 지역색을 지닌 음식은 제사음식 외에는 거의 없다. 어떻게 추어탕은 서울과 맞서 지역의 개성을 유지해왔을까?

추어탕은 가을을 대표하는 강장식품이다. 미꾸라지는 장어와 비슷하게 고단백에 무기질이 풍부하다. 무엇보다도 장어와 달리 흔했다.

각 지역에서는 시래기·우거지 등 식이섬유가 풍성한 채소와 함께 고단백의 미꾸라지를 조리해왔다. 서울식을 강요하는 미디어의 간섭도 추어탕은 비껴갔다. 또 추어탕은 공동체 정서를 품고 있다. 조상들은 여름철 천렵과 가을철 벼 베기 같은 마을 공동 행사 뒤 추어탕을 먹었다. 일종의 축제와 놀이 음식이었다. 또 여름철에 추어탕을 끓여 마을 노인들을 공양하던 전통 음식이었다. 지역별로 추어탕 레시피가 살아남은 것은 이런 전통 덕도 크다.

그래서일까? 많은 추어탕 가게는 대부분 갓 지은 솥밥을 개인별로 내준다. 정성이 들어간 솥밥이 공기밥보다 밥맛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다. 김치와 깍두기도 중국산을 쓰는 추어탕집을 본 적이 없다. 추어탕이란 전통음식의 무게 덕이 아닐까? 물 흐린다는 지청구를 듣던 미꾸라지가 우리 밥상의 핵심 가치인 지역성을 든든하게 지켜온 것이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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