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벼 아닌 현미로 저장…위탁판매 정착

2024-09-22

[다시 보는 일본 쌀산업] (상) 고품질 우오누마산 쌀 유통하는 ‘JA 우오누마’ 송풍기로 눈 저장고 냉기 순환 창고 연중 5~6℃ … 신선도↑ 연 9000t 보관…도매업체 납품 정부 매년 쌀 20만t 매입·비축 공급 달려도 양곡방출 자제해

쌀밥이 주식인 우리나라와 일본의 쌀산업은 같은 듯 다른 양상을 띤다. 일본의 양곡정책과 쌀 생산·유통·가공 방식은 그들만의 식생활과 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유의 특색을 지닌다. 이달초 농협경제지주의 선진지 연수에 동행해 엿본 일본 쌀산업 현장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눈 냉방으로 현미 저장…신선도 ‘업(up)’=일본 최대 쌀 생산지인 니가타현. 이 지역 남동부에 접어들자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우오누마시의 ‘고시히카리’가 노랗게 익어가는 풍경이 도드라졌다. 이곳에서 나는 벼 일부는 우오누마시 바로 옆 도카마치시에 자리한 ‘JA(일본농협) 우오누마’의 라이스센터와 컨트리엘리베이터로 모인다. 라이스센터는 정미·저장 시설을, 컨트리엘리베이터는 벼 선별·건조·저장이 가능한 대형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미곡종합처리장(RPC)과 비슷해 보이지만 저장시설 문을 열면 이채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벼가 아닌 현미 상태로 저장한다. 벼의 수분함량이 15% 내외가 되도록 건조한 뒤 현미로 만들고, 톤백 또는 30㎏들이 포대로 저온 저장한다. JA 우오누마는 매년 9000t가량의 생산량을 현미로 보관하면서 주로 도매업체에 납품한다. 이렇게 유통된 현미는 쌀가게 등 소매업체에서 손님이 원하는 대로 즉석에서 도정해 판매된다.

현미의 품질관리를 위해선 저온 저장이 중요한데 JA 우오누마는 천연 냉방시스템을 도입했다. 니가타현 같은 일본 호설지대에서 볼 수 있는 ‘유키무로(눈 저장고)’가 그 토대가 된다. 도카마치시에는 겨울이면 3∼4m 높이로 눈이 쌓인다. 매년 2월 제설작업 후 눈 930t을 창고 가득 쌓아두면 찬 공기가 들어차는데, 이를 송풍기로 1년 내내 저장 창고에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현미 저장 온도를 5∼6℃로 유지한다. 공기를 순환시키는 송풍기 외엔 전력을 쓰지 않아 에너지 비용 절감과 함께 이산화탄소 연간 배출량을 전기 사용 대비 70% 감축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유키무로에 들어서자 9월인데도 산처럼 쌓인 눈의 위용과 서늘한 온도에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하얀 눈이 까만 때로 뒤덮여 있었다. JA 우오누마 직원인 아베 칸타씨는 “송풍기로 공기를 순환하면서 현미 저장 창고에 떠다니던 먼지·쌀겨 등이 유키무로로 넘어와 눈에 달라붙은 것”이라며 “덕분에 현미 저장 창고의 공기가 깨끗해져서 양곡창고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묵은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본농협 70%는 위탁 판매=JA 우오누마는 쌀산업과 관련해 흑자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위탁 판매(수탁제)다. 수확기에 농가는 벼의 판매를 조합에 위탁하고, 조합은 가공·판매를 완료한 후 농가에 정산한다. 우리나라 농협 RPC 등이 농가의 출하 물량을 매입하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아베씨는 “정미·보관 등 비용과 수수료를 제한 판매 수익은 모두 농가가 가져간다”며 “처음부터 위탁 판매를 했기 때문에 농가의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JA전중)에 따르면 JA는 위탁 판매와 매입 방식 모두 실시하지만, 위탁 판매 비중이 70%로 월등히 높다. 도쿄의 JA전중 본사에서 만난 후지모토 다쿠 농정과장은 “농협이 너무 많은 벼를 매입하면 손해가 날 수 있는 만큼 주로 위탁 판매를 한다”며 “한국과 같은 벼 매입자금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쌀 수탁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농협 RPC 등의 경영 안정방안으로 거론돼왔다. 한국의 벼 매입 방식은 농가의 편의성을 증진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역계절진폭(단경기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할 경우 농협 RPC 등이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된다. 우리나라 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매입하는 농협은 2022∼2023년 역계절진폭으로 32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봤다.

하지만 국내의 쌀 수탁제 도입은 요원하다. 수탁제를 시행하면 쌀 판매가격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우려하는 농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2024년산 쌀 수확기 수급안정대책’에 ‘RPC 경영 합리화’ 방침이 담긴 것을 두고 “농민들은 RPC 벼 매입 방식을 ‘매취’에서 ‘수탁’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면서 “그렇게 되면 농가소득이 줄고 (농협의) 전량 매입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일본의 쌀 생산조정제를 통한 수급 균형과 철두철미한 정부양곡 정책 등이 쌀 수탁제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보기도 한다. 일본정부는 매년 20만t의 쌀을 사들여 5년이 지나면 해당 물량을 사료용 등으로 판매하는 식으로 100만t을 비축한다. 공급이 부족할 경우 정부양곡을 시장에 풀기도 하지만, 최대한 방출을 지양한다는 주의다. 지난해 작황 부진으로 최근 쌀값이 상승세를 띠는데도 정부양곡을 방출하지 않았다.

후지모토 과장은 “정부는 쌀이 남아돌더라도 매년 20만t만 비축하는 대신 (쌀값이 높더라도) 대흉작이나 2년 연속 흉작이 드는 경우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정부양곡을 풀지 않는다”며 “최근 쌀 부족 상황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 데다 곧 햅쌀이 나오는 만큼 방출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니가타·도쿄(일본)=하지혜 기자 hybrid@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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