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지분 90% ‘무늬만 농업회사’…지원금·세제혜택 ‘먹튀’

2024-07-01

‘1만6103개, 1.6%.’

2022년 농업회사법인 개수와 국내총생산(GDP)에서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1990년대 농업법인 제도가 도입된 후 농업회사법인은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농업의 GDP 내 비중은 동반 성장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런 모순의 이면엔 비농민 중심의 농업회사법인이 각종 지원금, 세제 혜택 등을 누리면서도 농업 발전엔 기여하지 않는 ‘애그리워싱’ 행태가 자리한다.

‘농민신문’은 NH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금융연구소)와 함께 “무늬만 농업 ‘애그리워싱’ 막자”라는 세차례 보도를 통해 농업회사법인 출자 지분 개선 등 농업의 질적 성장을 확대할 방안을 모색한다.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할 때 비농민이 총 출자액의 90%까지 출자할 수 있다는 규정이 농업의 질적 성장을 막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각종 지원금, 세제 혜택만을 노린 위장 농업법인들이 난립하면서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소는 최근 ‘농업 미래성장 산업화 연구’를 통해 현행 농업회사법인의 출자 지분 구조가 농업의 질적 성장에 한계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농업법인 형태는 농업회사법인과 영농조합법인 두가지다. 정부는 농업 경쟁력 강화와 농업을 산업화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1990년 ‘농업경영체 조직화’ 카드를 꺼내 들며 근거 법령을 만들었다. 농업회사법인은 ‘상법’상 회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는 기업적 경영체다. 영농조합법인은 ‘민법’상 조합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는 협업적 농업경영체다.

두 법인은 설립 요건과 의결권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영농조합법인은 농민이 5인 이상일 때 세울 수 있고, 의결권은 농민인 조합원 1명당 1표를 행사할 수 있다. 반면 농업회사법인은 농민 1명 이상만 있다면 비농민도 설립에 참여할 수 있다. 1994년 비농민의 출자액을 50% 이내로 제한했지만 2009년 현행 수준으로 완화했다. 의결권도 출자 지분에 비례해 1주당 1표를 행사할 수 있다. 농민의 지분이 10%이고 비농민의 지분이 90%인 경우 비농민의 의결권이 더 강하다는 뜻이다.

다만 정책 지원과 혜택 면에선 공통점이 있다. 두 법인 모두 농지 소유가 가능하고 취득세 감면, 소득세 면제 등 세제 혜택도 적용받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업법인의 수는 지속 증가해 2022년 2만6104개로 집계됐다. 영농조합법인은 1만1개, 농업회사법인은 1만6103개이다.

농업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사례가 늘었으니 산업의 성장이 기대되지만 역설적으로 농업은 저성장 국면에 있다. 우선 농업소득부터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농가 평균 농업소득은 1000만원 아래로 떨어져 약 30년 전인 1994년(1032만5000원)보다 낮은 수준을 보였다. 같은 해 한국 농림어업 국내총생산(GDP)은 275억달러로 전년보다 18.6% 내렸고, GDP 중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였던 전년보다 내린 1.6%로 나타났다.

이소연 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비농민 출자 비율이 대폭 완화되면서 농업회사법인이 크게 증가했고, 더불어 농식품부의 관련 예산 증액, 민간 투자 활성화 정책 등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농업의 실질 성장은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소는 농업회사법인에 투자하는 농민과 비농민의 투자 성향을 물리적 투자와 금융 투자로 두고, 농민과 비농민의 투자 성향을 분석했다. 물리적 투자는 시설 등 농업 생산과 직결된 투자로, 금융 투자는 부동산 투자 목적 등 비생산 관련 투자로 가정했다. 분석 결과 농민과 비농민의 투자 성향이 같을 때 물리적 투자를 선택하는 기업의 수가 증가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농민과 비농민 모두 농업 생산과 직결된 곳에 투자하는 것으로, 이럴 때 농업의 질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농민과 비농민의 투자 성향이 다를 경우 농민의 지분 투자 비율이 높아야만 물리적 투자를 선택하는 기업수가 증가했다. 농민에게 기업의 주도권이 넘어가야 농업의 물리적 자본 투자가 늘어간다는 의미다.

이 부연구위원은 “2009년 비농민의 농업회사법인 출자 지분 제한을 90%까지 늘린 배경에는 농민과 비농민의 투자 성향이 같다는 전제가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농산업의 실질 GDP 성장에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결국 농지 소유, 세제 혜택 등 많은 이점이 농업회사법인의 수만 늘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연구소는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농산업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기술과 접목돼 미래성장 산업으로 발전하려면 농업회사법인의 출자 구조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기환 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농업회사법인이 농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지 못한다면 향후 농업금융, 식료품 제조업 등 농산업 밸류체인 전반이 연쇄적으로 붕괴할 것”이라며 “농업분야의 혜택만을 목적으로 ‘농업을 하는 척’하는 위장 법인의 행태를 개념적으로 정의하고 법인 지분 구조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리 기자 glass@nongmin.com

애그리워싱이란?

기업이 실제로는 농업과 관계없는 활동을 하면서 농업법인으로 위장해 농지 소유, 세제 감면 등 혜택을 누리며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기업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얻는 전략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그린워싱’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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