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직장 내 성희롱을 주제로 한 상담을 요청 받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성희롱이 성립하는지, 어떤 후속 조치를 해야 하는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고, 그래서 조언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유형력의 행사나 분명한 신체적 접촉으로 성폭행·성추행 등이 성립한다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정리하자면 성폭행·성추행은 이 글에서 논하는 대상이 아니다.
성폭행·성추행 등의 사안이라면 징계 처분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형사처벌 등을 피할 수 없다. 그에 관한 판단과 후속 조치는 각각의 절차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내용에 따르면 된다. 그러나 문제 행위가 발언에 그치고, 발언 내용이 업무나 의례적이고 관습적인 행동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면 어떠한 조언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고민의 정도와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러한 사안에 관한 판단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각자의 주관적인 선입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서술할 내용은 40대 남성의 관점에서 작성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봐줬으면 한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법률의 조항과 판례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제2호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이란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 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대법원 2007두22498 판결은 위 규정상의 성희롱을 인정하는 기준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①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②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아니면 계속된 것인지 아닌지 등 구체적 사정을 참작해 판단한다.
③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행위가 있고, 그로 인해 행위의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음이 인정되는 경우 직장 내 성희롱을 인정한다.
하지만 법령의 조항과 대법원의 판시는 너무나 추상적이다. 내용을 봐도 도대체 어느 경우에 직장 내 성희롱이 성립하는 것인지 기준을 잡기 어렵다.

다음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본다. 광주고법 2024누11166 판결은 “남자 친구랑 피임 조심해야 한다”는 발언이 여성 피해자에게 불필요하게 사적인 영역에 관해 언급한 것으로 부적절하고,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으로 보인다고 봤다. 그러나 여러 사정을 종합해 위 발언은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성적 언동이지만, 성희롱으로는 볼 수 없다고 봤다.
반면 서울행정법원 2023구합68296 판결은 다른 팀원들이 있는 앞에서 “멀리 볼 것도 없지 않나, 애 낳을 생각이 없느냐”라는 질문을 한 것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판단의 근거로는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 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라는 점을 들었다.
그런데 같은 법원 2021구합66036 판결은 국어교육과 학생들이 참여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못생긴 여자는 착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착하기라도 해야”라는 말을 한 것이 대상자의 일반적인 단점을 지적한 것으로서 모욕감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더라도,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까지 느끼게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상의 사례를 종합해 보면 어느 경우에 성희롱이 성립하는지, 성희롱이 성립한다면 그에 맞는 제재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성희롱이 부정됐다고 하더라도, 이 같은 이슈를 일으킨 사람은 직장 내 평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이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셈이다. 또한 수위가 아무리 낮더라도 일단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직장을 오래 다니기 어렵다.
따라서 직장에서는 업무에 관한 대화만 할 일이다. 이성 간에 사적으로 민감한 대화를 할 이유가 없다. 필자는 여러 상담에서 억울하다고 하는 분들에게 “회사 내에서 꼭 그 얘기를 해야 했나?” “업무에 그 대화가 필요했는가”라고 질문하는데, 합당한 답변을 들은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상담하는 필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래저래 성희롱은 어렵고 불편한 사안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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