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전두환씨의 비상계엄 포고에 따른 피해자들은 44년이 지난 지금도 법정싸움을 하고 있다. 전씨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와 삼청교육대 설치·운영의 근거가 됐던 계엄포고 13호가 위헌·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최근 들어 시작됐다.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고통받는 ‘전두환 피해자’들은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국가가 또 트라우마를 줬다”고 입을 모았다.
“제가 그래도 살 만큼 살았잖아요. 저는 총도 맞아봤거든요. 계엄군들이 총 들고 있는 걸 보니까 앞에 가서 ‘나는 살 만큼 살았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받아들일 거면 우리를 먼저 짓밟고 가봐라’고 말하고 싶더라고요.”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순노씨(62)는 1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TV로 계엄군이 국회 안에 진입하는 장면을 보면서 “본인들이 타깃으로 삼은 곳을 특정해 진압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44년 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두환 시절 계엄을 겪었던 세대에게, 그리고 지금 촛불을 들고나오는 20~30대에게 준 트라우마는 또 평생 갈 것”이라며 “특히 민주화 이후의 비상계엄이라는 점에서 정신적 트라우마는 치유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씨를 포함해 유공자 800여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가 위자료 430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달 28일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했다. 아직 재판 중인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은 이밖에도 더 있다.
열다섯살에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주상용씨(59)도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씨는 1980년 8월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돼 26사단 삼청교육대로, 이후 12월엔 11공수여단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투입됐다. 주씨는 “벌써 44년이 흘렀는데 어제 일은 기억이 안 나도 그 당시 삼청교육대에서 겪은 일은 생생할 정도”라며 “트라우마 때문인지 저는 그냥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고 말했다. 주씨는 이번 계엄에 대해 “영장 없이 무고한 사람을 체포, 구금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씨는 현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이다.
2018년 12월 대법원은 삼청교육대 설치·운영의 근거가 됐던 ‘1980년 8월4일 계엄포고 13호’가 위헌·위법해 무효라고 밝혔다. “계엄포고 13호는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이후 동요 우려가 있는 시민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고, 발령 당시의 정치·사회 상황이 계엄법에서 발령 요건으로 정한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판단 이유다. ‘전두환·노태우 내란죄 등 사건’에서 당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신군부의 조치가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한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것에 이어 신군부 시절 계엄포고 13호도 무효라고 본 첫 판결이다. 이후 민사소송이 진행됐고 지난해부터 법원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시민들은 ‘계엄 트라우마’로 불안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시민 105명은 ‘윤석열 내란행위에 대한 위자료청구소송 준비모임’ 주도하에 지난 10일 윤 대통령을 상대로 1인당 10만원의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다. 이들은 “국민으로서 입은 마음의 상처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며 2차 소송도 제기할 예정이다. 2차 소송에는 1만명의 시민이 원고로 참여해 1인당 1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한다.
이번 소송을 공동제안한 이금규 변호사(법무법인 도시)는 “유혈사태가 없었더라도 이번 비상계엄으로 온 국민이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렸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존감도 하락해 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탄핵과 내란죄 처벌로 끝나는 것보다 전 국민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온다면 이번 사태와 유사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더 강한 낙인이 찍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