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주말 아침 날벼락이 떨어졌다"…베테랑 기장 목숨 앗아간 '무리한 비행' 그 전말은 [오늘의 그날]

2025-11-15

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12년 전 오늘인 2013년 11월 16일 오전 8시 55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김포공항을 떠나 전북 완주 LG전자 공장으로 향하던 민간 소형 헬리콥터가 아파트 고층부를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다.

헬기는 서울 잠실에서 LG전자 임원을 태운 뒤 완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짙은 안개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날씨 속에서도 무리하게 비행에 나서며 결국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사고 직후 불길이 치솟았고 조종사 2명은 현장에서 숨졌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한강 루트’ 이탈한 헬기, 아파트와 충돌=당시 서울 전역엔 안개가 짙게 껴 가시거리가 100m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헬기는 오전 8시 40분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비행을 시작한 헬기는 8시 50분쯤 노들섬을 지나며 한강 상공을 벗어났다. 이후 고층 건물이 밀집한 도심 상공으로 진입한 지 불과 5분 만에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 23~26층 부근을 들이받았다.

헬기는 충돌 직후 폭발하며 추락했고 화염에 휩싸였다. 소방당국이 10여 분 만에 도착해 화재를 진압했지만 조종사 2명은 끝내 구조되지 못했다.

아파트 외벽과 유리창 30여 장이 깨지고 입주민 8가구 32명이 대피했다. 일부 주민은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큰 부상은 없었다. 영동대로 일대는 순식간에 교통이 마비됐다.

◇"잔뜩 낀 안개에도"…결국 ‘무리한 이륙’=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2015년)에 따르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은 조종사의 무리한 비행 판단이었다.

당일 오전 7시 30분경, 기장은 자택에서 김포공항 기상대로 전화를 걸어 기상 상황을 확인했다. 그 결과 비행 취소 판단을 내렸지만, 상황을 전해 들은 회사 운항 담당자가 “기상이 좋지 않으면 김포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는 의견을 전하자 다시 비행을 결정했다.

부기장 역시 잠실 헬기장 관리인에게 네 차례에 걸쳐 기상 상태를 물었고 “1.1㎞ 떨어진 청담대교도 안 보인다”, “90m 앞 건물도 희미하다”는 답을 들었지만 이륙을 강행했다.

조사위는 LG전자가 헬기팀 외에 독립된 운항관리자를 두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실질적으로 운항 통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 LG전자는 “조사 결과를 존중한다”며 운항관리자 채용 등 안전 절차 개선을 약속했다.

◇대통령 헬기 조종하던 베테랑들의 마지막 비행=사고 헬기의 기장 박인규 씨는 공군사관학교 26기 출신 예비역 중령으로 전두환·노태우 정부 시절 대통령 전용 헬기를 12년 넘게 조종한 베테랑이었다. 공군에서 21년간 6500시간 이상 비행한 뒤 1999년 LG전자에 수석기장으로 특채돼 상무급 대우를 받았다.

함께 탑승한 고종진 부기장(당시 37세) 역시 공사 48기 출신 예비역 소령으로 약 3300시간의 비행 경력을 가진 대통령 전용기 조종사 출신이었다. LG전자에는 사고 발생 약 9개월 전인 2023년 2월 입사했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LG전자는 유족과 합의해 장례를 4일장으로 치렀으며 발인일인 11월 19일 남상건 부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진행됐다. 보험 절차에 따라 두 조종사에게는 각각 20만 달러(한화 약 2억1000만원)가 지급됐다.

◇법원 “LG전자, 주민에 40~60만원씩 배상하라”=피해 주민 198명은 LG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윤상도 부장판사)는 “LG전자는 헬기 운항이 어려운 기상 조건에서 운항을 제한해 사고를 막을 의무가 있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짙은 안개 속에서 임직원 편의를 위해 비행을 강행한 과실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헬기 충돌로 직접 피해를 본 102동 주민 92명에게는 각 60만원이 다른 동 주민 94명에게는 각 40만원의 위자료가 지급됐다. 판결문은 “사고 충격음과 잔해 노출로 정신적 피해가 컸고 복구 과정에서도 소음·분진 등 생활 불편이 뒤따랐다”고 밝혔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