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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영국의 최대 걱정거리는 에너지 수요의 70% 이상을 의존하는 석탄의 고갈 가능성이었다. 전문가들은 석탄 동력의 효율을 높이는 데 열중했다. 더 적은 석탄으로 기계를 돌릴 수 있게 되면 석탄 소비 총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젊은 경제학자가 찬물을 끼얹었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1865년 출간된 저서 ‘석탄 문제’에서 “연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소비가 줄어든다는 가정은 생각의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기술 혁신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면 산업 전반에 걸친 수요 증대로 인해 에너지 소비가 외려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제번스 역설(Jevons Paradox)’이다. 자동차 연비가 좋아지니 사람들이 차를 더 많이 몰고 다니고, 고속도로 차선을 늘려도 교통 체증이 해소되지 않는 현상도 ‘제번스 역설’로 설명될 수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제번스 역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의 10%에 불과한 저비용으로 고기능 AI 모델 개발에 성공하면서다. ‘가성비 AI’의 등장으로 고비용·고성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나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을 뒤흔들었으나 AI의 효율 증대가 AI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그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는 상반된 기대가 분출됐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미디어에 “‘제번스 역설’이 다시 나타난다”며 낙관론에 불을 붙였다. ‘닥터 둠’으로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명예교수도 “긍정적인 공급 충격이 AI 수요를 엄청나게 증가시킬 것”이라고 봤다.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와 견줄 만한 ‘AI의 스푸트니크 순간’으로 평가되는 딥시크의 등장에 글로벌 AI 시장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로 무한 잠재력을 갖는 AI 산업의 거대한 흐름에 올라탈지 주춤거리다가 도태될지, 한국 AI 산업이 기로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