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공공현장인데···책임은 민간만 지는 '중대재해법 빈틈'

2025-08-12

올해 주요 건설사 사망사고의 절반 가까이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국토부 등 공공 발주 현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 의무 강화를 목표로 제정됐지만, 발주기관의 공기(工期) 단축과 예산 절감 압박이 사고를 부르는 핵심 배경으로 지목된다. 업계에서는 안전을 위협하는 이런 구조를 방치한 채 책임을 민간에만 묻는 현행 법체계의 '비대칭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2025년 현재까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권 주요 건설사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민간 현장 8건(53%), 공공 발주 현장 7건(47%)으로 집계됐다. 대형사는 민간 사업 비중이 훨씬 크지만, 공공 사업 참여 비율이 높은 중견사의 경우 공공 현장 사고 비중이 이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들어 고속도로와 지하철 등 대형 공공사업에서 잇따라 참사가 났다. 지난 1월에는 LH가 발주한 김해 신문1지구 A7-1 공동주택(시공 포스코이앤씨)에서 1명이 숨졌고, 2월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한 세종·안성 고속도로 9공구에서 교량이 붕괴해 4명이 사망, 6명이 부상했다. 4월에는 광명 신안산선 5-2공구 환기구 작업 중 포스코이앤씨 소속 노동자가 숨졌으며, 7월에도 함양창녕·광명서울 고속도로 현장에서 각각 사망·중상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2월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주관하고 나머지 대형 건설사들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시공 중이던 안성~천안 고속도로 교량 인양 작업 도중 거더 5개가 연쇄적으로 붕괴해 작업자 10명이 추락했고, 이 가운데 3명이 숨졌고 5명이 크게 다쳤다. 4월에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한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5-2공구 지하터널 공사장에서 환기구 구조물이 무너져 작업자 1명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공공현장 사고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발주처 중심의 사업 구조가 있다. 고속도로·지하철·공공주택 등 대형 공사는 설계·예산·공기 결정권을 발주기관이 가진다. 그러나 사업비 절감과 일정 단축 요구가 하도급 단계로 전가되는 관행이 여전하다. 공사비와 기간 연장을 꺼리는 발주처의 요구는 인력·장비 부족과 안전관리 공백을 낳으며, 시공사는 추가 인력 투입보다 공정 압축을 택하게 된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까지 맞물리면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발주기관은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상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은 기업 경영책임자 처벌만 규정해, 발주처의 과도한 일정 단축 지시나 예산 압박에 대한 제재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광명 터널 사고 때도 경찰이 발주처·감리·시공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수사했지만, 발주기관 관리 책임이 명문화돼 있지 않아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예산과 기간을 고정하고, 지연 시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민간에 부담을 전가한다. 이 구조에서는 발주기관의 영향력에 비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이에 발주처의 안전 의무를 법제화하고, 공공과 민간이 안전비용과 책임을 공동 부담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발주기관에 안전계획 수립·관리 책임을 명확히 부여하고, 중대재해 발생 시 행정책임자도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치 일정이나 회계연도에 맞춘 무리한 기간 단축을 막기 위해 중간 점검과 유연한 조정 절차를 도입하고, 공기 단축 인센티브를 안전 우선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중대재해는 발주처 책임도 함께 묻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고, 건설협회 관계자는 "공공사업 발주 구조상 시공사는 결정권 없이 책임만 진다"고 비판했다.

민간 시공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청·재하청 관리 소홀, 안전관리비 유용, 안전관리자 상주 미흡 등은 여전히 반복되는 문제다. 결국 발주처와 시공사가 함께 책임을 지는 구조로 재편해 공공과 민간이 안전을 공동으로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 공통의 인식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은 발주기관에 안전계획 승인과 점검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상 발주기관은 법 적용 범위에서 사실상 빠져 있어, 사고가 나도 직접적인 형사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설계·공기·예산을 결정하는 권한은 공공이 쥐고 있으면서도, 사고 발생 시 책임은 시공사와 하청업체가 전적으로 떠안는 구조다. 발주자가 무리한 일정 단축이나 비용 절감 지시로 위험을 높인 경우까지 법 적용 범위를 넓히고, 안전 의무와 제재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다만 발주기관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면 공기 지연이나 예산 증액에 따른 정치·행정 부담이 커져 사업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지, 시공 단계에서 발생한 사고까지 행정기관이 부담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제도 개선 과정에서 책임 확대와 사업 효율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한편, 법무법인 김앤장과 율촌 등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해석상 발주자가 처벌 대상에 포함되려면 해당 공사를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 즉, 현행 법상 발주자는 원칙적으로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면 예외적으로 포함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입법적으로 발주자 책임을 추가할 가능성은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개정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업계 일각에서는 발주자의 책임을 명문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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