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 그림이야기, 문 빅토르 작 ‘인형사’

2025-04-14

[전남인터넷신문]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세계적인 고려인 미술 거장 문빅토르 화백의 회화작품 ‘인형사’ 는, 1937년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를 중심 모티프로 삼아, 체제 아래 조종당했던 고려인의 비극적 운명을 깊은 상징성과 함께 담아낸 대작이다.

작품은 붉은 톤의 극장 무대를 배경으로 중앙에 선 인형 조종사, 즉 ‘인형사’를 중심에 배치했다. 섬세하면서도 과장된 손짓으로 인형들을 조종하는 인형사의 움직임에 따라, 무대 위 인형들은 춤추고, 웃고, 절망하며 때로는 무릎 꿇는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에는 자율성이 없다. 모든 동작은 인형사의 손길 아래에서만 존재하며, 이로써 인간이 체제에 의해 철저히 통제당하는 현실을 은유한다.

무대 하단 좌우에는 구소련 시절 정보요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관객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감시자다. 인형들의 사소한 몸짓과 감정 하나까지 면밀히 관찰하며, 극장이라는 공간을 통제와 억압의 상징으로 전환시킨다.

무대 좌편에는 선전선동용 악단이 등장한다. 감정 없는 연주자들은 기계적으로 악기를 다루며, 당시 정권의 메시지를 되풀이하듯 연주한다. 이들 주변에는 강제이주로 인해 삶의 활력을 잃은 인형들이 흐느적거리듯 놓여 있다. 이들은 중노동, 정체성 상실, 희망의 소멸을 상징하는 고려인의 상처입은 자화상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인형사는 화려한 의상과 기괴한 표정을 지닌 채 중앙에 우뚝 서 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스탈린을 연상케 하며, 절대 권력을 쥐고 민족의 운명을 연극처럼 연출한 ‘역사의 조종자’를 상징한다.

문빅토르 화백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풍자나 역사 회고를 넘어, ‘누가 우리의 삶을 조종했는가’, ‘우리는 누구의 무대 위에 서 있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극장’이라는 공간 설정은 예술과 선전, 인간성과 통제를 한데 엮으며, ‘고려인 디아스포라’가 겪은 정치적·정서적 고립과 억압의 서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 화가의 ‘인형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남긴다. 그것은 시대는 변했지만, 진정 우리는 조종당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다.

현재 이 그림은 고려인종합지원센터 외벽을 장식하며 고려인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고려방송: 양나탈리아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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