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인간 영혼을 세공하는, 문화

2025-09-01

최근 정부는 국민 영화 관람 6천 원 할인권 450만 장을 배포했다. 7월 25일 할인이 시행된 후 약 한 달간 사람들이 몰린 곳은 예술영화관이었다. 최근 몇 년간 예술독립영화는 관객 수 5천 명만 넘어도 환호 했기에 혜택 시행 후 일어난 변화는 놀라웠다. 부모의 이혼을 겪는 소녀의 성장담인 <이사>(소마이 신지 감독)는 3만 5천 명, 예상치 못한 죽음이 불러일으킨 마을의 변화를 그린 <미세리코르디아>(알랭 기로디 감독)는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고 평균 관람객 수를 초과했다. 이 현상은 현재 주머니 사정에서 문화생활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을 뿐 조건만 된다면 사람들은 영화관을 찾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예술영화관의 이용 비율이 높아진 것은 여전히 완성도 높은 영화에 대한 수요를 나타낸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스펙터클한 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인간 삶을 고찰하고픈 관객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나고 관객 반응이 좋았던 작품들이 종종 한국에 수입이 된다. 철거 전날 동네 야구장에서 펼쳐지는 경기를 그린 <마지막 야구 경기>, 요양원에 들어간 80대 노년 여성이 겪는 성장기를 다룬 <친숙한 손길>을 포함한 여섯 편 등이 그 예시다. 이 현상을 영화제가 경제 활동에 미친 영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보단 큰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영화가 가진 의미를 수입사들이 지지한 결과로 보인다. 이런 사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라며 경제 논리 속에 사라져가는 소중한 문화의 일부분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또한 최근 젊은 영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소규모 상영 공간을 운영하고 고전부터 최신 영화까지 아우르는 기획전과 워크숍을 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창작자이자 관객으로서 한 차원 깊고 넓은 예술 영역의 확대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자생적인 실천의 하나다.

이러한 정황을 지켜보면 지금 영화계의 가장 큰 숙제는 예술영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 의지가 있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영화를 선보일 장소다. 이는 기업의 이윤 추구 논리로는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오직 공공 기관만이 양질의 영상 생태계 조성의 주체로 설 수 있다. 정부 기관이 마치 기업처럼 성과지표(KPI)와 같은 성장 위주의 평가 기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한 변화가 요원하지만 말이다.

한가지 희망은 우리가 전환의 시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속도와 분석으로 경쟁해야 하는 성장의 영역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 길은 탈성장의 영역, 개개인의 특성과 인간만이 겪는 도덕과 윤리에 대한 철학적 공간이다. 예술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순간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인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손꼽혀 왔다. 좋은 책과 음악, 영화와 같은 양질의 문화는 영혼을 세공한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논리와 정보보다 감성의 회복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공공영역이 할 일은 글로벌 1위가 아니라, 인류 역사에 남을 문화를 피우고 그것을 소화하는 이들을 위해 판을 일구는 것이다. 2026년 말 완공될 ‘독립영화의 집’이 양질의 문화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제도적으로 보장 받고, 흥행에 집착하지 않으며 영혼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수치가 아닌 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 

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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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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