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천재’ 만드는 한 장의 마법

2025-09-13

두르고 걸치고 묶고 감싸고 …활용도 ‘갑 오브 갑’

소재·패턴에 따라 스타일 느낌도 달라져

내게 맞는 패턴과 착용법 찾는 게 가장 중요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피부에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예년 같으면 휴가도 이미 다녀왔고, 벌써 한 해의 절반이나 훌쩍 지나갔다 싶어 이래저래 아쉬움만 남았을 테지만,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던 터라 오히려 가을을 반갑게 맞이하게 되는 듯하다.

실상 가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한낮 기온은 여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을 재킷이나 카디건을 걸치기에는 아직 부담스럽다. 이럴 때 가장 손쉽게 찾게 되는 건 스카프다. 사실 스카프는 상당한 보온력을 갖춘 아이템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그 기능성 때문에 구매한 경우는 드물다. 스카프를 두르는 건 옷을 입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스카프의 가장 큰 매력은 활용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작은 스카프로 목에 둘러 포인트를 줄 수 있고, 커다란 스카프를 어깨에 걸치기만 해도 드레시한 룩이 된다. 셔츠 칼라 아래에 타이처럼 묶어 연출하거나, 느슨하게, 때론 칭칭 감아 멋을 낼 수도 있다. 비단 목에만 두르는 데 그치지 않고, 포니테일에 묶어 헤어 액세서리로 활용하거나 가방 손잡이에 감아 하나의 장식처럼 쓸 수 있다. 작은 조각의 천이지만,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스카프는 소재에 따라 전혀 다른 계절감을 전달한다. 스카프에도 면, 실크, 리넨, 캐시미어, 울, 폴리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지만, 스카프의 소재하면 단연 실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실크는 그 두께에 따라 계절감이 달라진다. ‘몸메(momme)’는 실크의 무게를 재는 단위로, 숫자가 클수록 원단이 두껍고 무거워지며 가격도 함께 오른다. 1몸메는 4.34g/㎡(제곱미터당)에 해당한다. 본래는 일본 에도시대에 화폐·보석·귀금속 무게를 재는 데 사용되었으나, 이후에는 실크 원단의 밀도와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로 국제 표준화되었다.

10~14몸메의 실크는 하늘거리고 비쳐서 해변이나 여름용 스카프로 적합하다. 사이즈가 풍성해야 이 얇은 실크의 매력이 발산된다. 보통의 실크 스카프는 16몸메가 가장 많다. 실크 스카프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브랜드 ‘에르메스’의 사각 스카프 두께는 20몸메 정도다. 컬러감이 확실하게 표현되고, 수십 가지의 컬러가 섬세하게 드러나는 두께가 바로 20몸메라고 생각한다. 스카프 연출의 특성상 묶고 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강도 역시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구김 뒤에 탱글한 볼륨감은 20몸메에서 비롯된다.

실크 스카프의 미묘함은 소재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재가 손끝에서 전해지는 물리적 감각을 완성한다면, 패턴은 눈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적 감각을 표현한다. 에르메스의 ‘카레(Carre)’에는 승마와 마구, 식물과 동물, 신화와 건축 등 다양한 모티프가 겹겹이 놓인다. 작은 정사각형 안에 세계가 담기고, 착용하는 이는 그 세계에 잠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단순한 액세서리를 넘어, 이야기를 걸치는 것이다.

패턴의 힘은 에르메스만의 것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브랜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패턴을 언어처럼 사용한다. ‘토템(Toteme)’의 스트라이프는 단순한 줄무늬 같지만, 절제된 선으로 북유럽의 미학을 드러낸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낸 직선은 여백을 남기고, 어떤 옷차림에도 질서를 더한다. 패턴이 강렬하기보다 절제될 때 오히려 더 분명한 힘이 느껴진다. 반대로 ‘디올’과 ‘구찌’가 보여주는 로고 플레이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이니셜과 상징은 단순한 표식을 넘어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고전적인 패턴인 페이즐리(Paisley)는 오리엔탈리즘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기운을 담아낸다. 모노톤은 패턴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강력하다. 색을 줄이면 형태가 드러나고, 소재의 질감과 실루엣이 더욱 분명해진다. 결국 중요한 건 나만의 패턴을 찾는 일이다. 스카프 패턴과 옷 컬러를 톤온톤으로 맞추면 질서가 생기고, 배색을 활용하면 리듬이 더해진다. 어떤 날은 같은 계열의 색 안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 좋고, 또 어떤 날은 전혀 다른 색으로 하나의 포인트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유행이라고 해서 스카프를 허리에 묶어 자칫 체형이 도드라져 보이게 하기보다는, 무심하게 목에 자연스럽게 두르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건처럼 묶는 스타일에 도전해볼 수도 있다. 조금 부담스럽다면, 작은 스카프로 목을 심플하게 감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자연스러움이야말로 가장 큰 매력이자, 진정한 세련됨이 아닐까.

■박민지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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