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 대표적인 ‘반전 운동가’
지난 2월 미국배우조합 시상식서
음운 비슷한 ‘위크·약함’ 끌어와
다양성 억압 정책 등에 ‘쓴소리’
공감은 깨고 열려야 가능한 감각
진보 의제에 대한 조롱의 언어로
‘워크’가 쓰이는 것에 대한 반박
제인 폰다가 말했다. “워크(woke, 깨어 있음)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쓴다는 뜻일 뿐이다.”
지난 2월2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제31회 미국배우조합(SAG) 시상식 중 한 말이다. 폰다의 연설은 일련의 워크 공격에 대한 반론이다. 폰다는 이날 워크와 음운이 비슷한 위크(weak, 약함)를 끌어와 “오해하지 말라. 공감은 위크나 워크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집권 전후 ‘워크’에 대한 공격은 드세졌다. 트럼프는 SAG 시상식 약 한 달 전이자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1월19일(현지시간)에도 “군대와 정부에서 극좌 ‘워크’ 이념을 퇴출하겠다”고 말했다. 3월22일엔 연방 교육부 폐지 절차 착수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교육부가 학생들에게 워크 이념을 강요한다고 비난해왔다. 4월15일엔 백악관이 공영방송 NPR과 PBS의 좌파적 편향성과 워크 프로그램을 문제 삼으며 예산 삭감을 의회에 요청했다.
최근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하버드대에 대한 보조금 취소와 면세 지위 박탈 위협 등 ‘대학 길들이기’ 배경 중 하나가 ‘워크’라는 분석이 현지에서 나온다. 앞서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대학 내 다양성·형평성·포용성 관련 프로그램 중단을 요구했다.
폰다의 말 중 공감은 깨고 열려야 가능한 감각이라는 점에서 이 문장의 워크는 반어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차별을 인식하며 깨인 상태’를 뜻하는 ‘워크’가 진보 성향 시민이나 진보 의제 전반에 대한 조롱, 혐오, 비난의 언어로 쓰이는 점을 받아치면서 공감과 워크의 뜻을 쉽고, 분명하게 되새긴 것이다.
폰다의 공감 대상은 넓다. 친트럼프와 반트럼프라는 이분법으로 사람들을 나누지 않았다. ‘끼리끼리의 공감’을 강조한 것도 아니다. 이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정치 성향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마음으로 경청해야 한다. 우리에게 닥칠 일에 성공적으로 저항하려면 큰 텐트(공동체)가 필요하기에 그들을 우리 텐트 안으로 환영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공감론은 배우론, 연기론이기도 하다. 배우 활동을 두곤 “여성이 의견을 말하거나 화를 내면 안 되던 1940~1950년대 자란 저 같은 여성에게 자기 의견을 가진, 성난 여성을 연기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배우조합은 대부분의 노조와는 다르다. 노동자이자 배우인 우리는 유형의 물건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공감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우리 일은 다른 인간 존재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고, 그들이 왜,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며, 그들의 기쁨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하지 않나?”
폰다는 “노조가 꼭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big beliver)”이라며 운을 뗀 뒤 이렇게 말했다. “노조는 우리를 든든하게 지지하고, 우리를 공동체로 이끌어주며, 우리에게 힘을 준다. 공동체가 곧 힘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공격받고 공동체가 약해진 지금 이 시점에 공동체의 힘은 정말 중요하다.”
워크, 공감, 공동체는 저항과 연결된다. 폰다는 “매카시즘 말기로 수많은 이들의 경력이 파괴된 시기”였던 1958년 “할리우드가 저항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 예로 “한나 와인스타인 같은 용감한 미국 프로듀서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들을 고용”한 일과 “미르나 로이드, 존 휴스턴, 빌리 와일더는 수정헌법 제1조를 위한 위원회를 설립”한 일을 예로 들었다. 이어 말했다. “이들은 ABC 라디오에서 <할리우드의 반격>이라는 라디오 쇼를 진행했다.”
제인 폰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87세 여배우’의 몸매, 시상식 드레스, 운동 비법 같은 기사가 주로 뜬다. 몇 안 되는 폰다 시상식 관련 기사도 ‘드레스’ ‘나이’ 이야기다. 폰다가 최근 수년 사이 한국에서 주목받은 건 2020년 2월9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때 <기생충> 작품상 시상자로 나왔을 때다. 이날도 ‘드레스’가 화제가 됐다. ‘할머니 같지 않은 몸매’에 잘 맞았다거나 화려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화제가 된 건 아니다. 2014년 5월14일 칸 영화제 때 착용한 드레스를 다시 입었다.
열렬한 환경 운동가다. 2019년부터 기후위기 캠페인인 ‘금요일의 소방 훈련’을 주도했다. 워싱턴 의회 무단 점거 혐의로 매주 연행됐다. 그해 10월 시위에 필요해 할인해 산 ‘붉은색 모직 코트’를 가리키며 “내가 사는 마지막 옷이 될 것”이라면서 더 이상 쇼핑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드레스는 기후행동 연장선에 놓인 옷이다. 이날 붉은색 모직 코트도 걸치고 나왔다.
당시 <기생충>의 작품상 유력 경쟁자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만든 전쟁 영화 <1917>이었다. 미국 연예 전문지 ‘벌처’는 시상식 뒤 분석 기사를 내고 “제인 폰다를 시상자로 데려와 원테이크 전쟁 영화에 작품상을 주려고 할 리는 없었다”고 했다.
폰다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하며 급진적인 반전 활동가다. 1970년대에는 베트남전, 2000년대에는 이라크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열정적 페미니스트다. 2005년 로빈 모건,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여성미디어센터를 창립했다. 이 센터는 성차별과 여성혐오, 성폭력 등 여러 문제를 다룬다.
제인 폰다는 193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한동안 ‘헨리 폰다의 딸’이었다. 지금은 헨리 폰다를 제인 폰다의 아버지로 기억한다. 사회운동가 면모를 먼저 떠올리곤 하지만, 타고난 배우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받았다. 최근까지도 <그레이스 앤 프랭키> 등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