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호황 뒤에 가려진 구조적 위험…조선업 인권보고서 발간 기념 국회 토론회

2025-11-20

[울산저널]김형균 기자= 울산을 비롯한 전국 조선소 현장의 고질적 산재·인권 문제가 다시 공론의 장으로 떠올랐다.

18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2025 한국 조선업 인권보고서 발간 기념 국회 토론회’에서는 조선업 호황의 이면에서 계속되는 중대재해와 노동권 침해 실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이날 토론회는 조선업인권침해대응연대와 노동·인권단체, 금속노조, 김태선, 이용우, 신장식, 한창민, 정혜경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매년 반복되는 조선소 산재 사고와 하청노동자·이주노동자 차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이번 토론회는 “한국 조선업 구조의 뿌리부터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재해율 3.9배, 사망만인율 4.1배… 대부분 하청노동자가 쓰러진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2024년 조선업 재해율은 전체 산업의 3.9배, 사망만인율은 4.1배로 압도적으로 높다”며 “지난해 5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3536명이 다쳤다”고 지적했다.이는 2025 한국 조선업 인권보고서가 밝힌 수치로, 조선소의 중대재해가 거의 모든 공정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울산조선소 포함 주요 사업장에서 화재·폭발·추락·끼임·익사 등 다양한 유형의 사고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고 피해의 다수는 원청이 아닌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청의 기성단가 인하, 다단계 하도급 구조, 형식화된 안전관리체계, 솜방망이 처벌이 사고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됐다. 현 사무국장은 “원청이 실질적으로 작업을 통제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가 사고를 고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2만3000명, 조선소 위험작업의 ‘최전선’에 동원”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상임활동가는 조선업에 광범위하게 도입된 이주노동자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현재 조선업에는 2만3000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브로커에게 고액 수수료를 지불하고 입국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대부분 저임금·위험작업 배치·강제노동·부당해고·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울산·거제·영암 조선소 등 대규모 조선단지에서 위험도가 높은 공정일수록 이주노동자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이은주 상임활동가는 “정부의 단기·저임금 외국인력 정책이 조선소 위험업무를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한국 조선업의 ‘위험의 이주화’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 만들면 고소·고발… 원청은 교섭 거부, 노동자는 사각지대”

김동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조선업 노동자들의 노동권 침해 실태를 다뤘다. 보고서는 원청의 조직적 교섭 회피, 하청노동자 대상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사내하청·물량팀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성 부정을 한국 조선업 노동권 탄압의 핵심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조선업 노동자들이 안전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노조 할 권리를 회복하지 않으면 산재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윤용진 금속노조 전남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조선업 하청노동자는 70~80%를 차지하지만, 임금체불·고용불안·산재·사회보험 미납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피해를 겪어왔다”며 “지금이 하청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적기이고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울산·거제·영암… 조선업 도시의 공통 과제는 ‘구조개혁’”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국회의원들도 조선업 구조개선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김태선 국회의원은 “울산 조선업의 영광은 노동자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데 산업의 성과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일은 끝내야 한다”고 했고, 이용우 국회의원은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이 조선소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작동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장식 국회의원은 “조선소 노동자의 참혹한 현실의 원인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라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고, 한창민 국회의원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에는 형사처벌과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가 뒤따랐다”며 조선사, 발주사, 정부가 노동자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혜경 국회의원은 ”조선산업에 ‘생명존중, 노동존중’ 가치가 우선되는 건강하고 활력 있는 일터로 전환될 수 있도록 국회의 역할 또한 결코 적지않다“고 강조했다.

울산은 HD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이 위치한 한국 최대 조선산업 도시다. 산재 문제는 곧 지역의 안전·경제·사회 문제와 직결된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더 이상 위험을 하청과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산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재명 정부 노동정책 방향, 조선업 개선 요구와 맞닿아

토론 참가자들은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가 조선업 문제 해결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 중 “일하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안전한 나라”, “차별과 배제 없는 일터”, “노동존중·노동기본권 보장”은 조선업 인권보고서가 제기한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다.

정부가 산재 예방·노동3권 보장·이주노동자 보호를 국정철학으로 명시한 만큼, 향후 조선업 개선 정책의 근거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조선업의 지속가능성은 노동자의 안전과 인권 보장에서 시작된다”

이번 토론회는 조선업이 다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는 시점에서, ‘성장중심 산업정책’에서 ‘노동존중 산업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조선업은 울산의 경제와 직결된 산업이지만, 그동안 산업 성과의 이면에는 하청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희생이 존재해왔다. 토론 참가자들은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울산·거제·영암 어디에서도 조선업의 지속가능성을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업인권침해대응연대는 “원청의 책임 강화, 다단계 하도급 금지, 직접고용 확대, 노동3권 보장, 이주노동자 보호, 공급망 인권실사 의무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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