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복잡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시간” <장자>을 읽고

2025-01-02

고전 읽기는 현실의 복잡한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장자> 외편(外篇) ‘산목’ 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虛舟)가 떠내려오다가 자기 배에 부딪혔다. 성질이 급한 그 사람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떠내려오던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당장 소리치며 비켜 가지 못하겠느냐고 할 것이다.…” 장자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아까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우리에게 빈 배가 와서 부딪힌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보다 통 큰(?) 자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만나볼 고전은 전국시대 송나라 사람인 장주(BC.369? ~286?)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장자莊子> (안동림 역, 현암사 1993)이다.

고전이라는 장르의 독서 활동이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현실의 복잡한 사태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장자>를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시국의 혼란과 고통을 벗어날 수 있을까? 아주 흥미로운 질문일 수도 있다. 장자적 사유의 핵심은 세속을 초월한 탈속의 경지와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주의 철학으로 결론을 내기도 한다. ‘소요유’ 장의 한번 날면 구만리 상공을 날아가는 대붕 이야기, ‘제물론’에 등장하는 장자가 나비가 된 꿈 이야기(호접지몽), ‘인간세’에 나오는 좌망, 심재,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이야기는 그러한 장자적 사유를 반증한다. 이러한 탈속과 절대 자유의 경지를 통해서 그가 가고자 하는 궁극적 방향은 무엇일까? 현실로부터의 도피나 이탈을 꿈꾸는 것일까? 종교적 신비체험일까? 그렇게 본다면 장자의 사상은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없고 훌륭한 고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결과 갈등을 풀어가는 지혜

<장자>를 읽어보면 복잡스러운 상황과 마주한 개인의 문제, 관계성에서 가져오는 대결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보인다. 한번 날면 구만리 창공을 날아가는 대붕을 보면서 참새로 안주해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좁은 세상에서,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라는 장자의 조언처럼 들린다. ‘물화(物化)’와 관련된 장주의 호접지몽은 또 어떠한가. 장주가 어느 날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꿈에서 깨어나 보니 이런 생각에 빠졌다. ‘지금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었는가.’ 이 이야기는 나와 사물의 경계를 허물고 사물과 내가 물아일체를 이루는 ‘물화’의 황홀경과 인식의 대전환 느끼게 한다.

제물론 장에서 유명한 조삼모사의 우화를 통해 짧은 시야와 단편적 사고에 매몰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장자는 더 나아가 하늘같이 높은 곳에서 전체를 균형 있게 본다는 ‘천균(天均)’과 흑백논리나 이분법에 빠지지 않아서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는 ‘양행(兩行)’을 통한 옳고 그름의 두 길을 모두 아우르는 의식의 지평을 보여준다.

<장자> 속에는 삶에 대한 고통과 번민, 집착과 관련해서 현해(懸解)라는 말이 누차 나온다. 거꾸로 ‘매달린 것이 풀린다’는 뜻으로 생사의 고락을 초월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는 죽음을 현해라고 보면서 슬퍼하기보다는 기뻐하는 기행(奇行)을 보여준다. 현해는 더 키워서 생각해 보면 잘못된 가치와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태에 비유하는 것은 아닐까. 정신적인 측면에서 가치의 물구나무를 선 사람은 자신이 거꾸로 선 채 살아가는 것조차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장자는 “외물에 흔들려 자기를 잊어버리고, 세속에 휘둘려 본성을 잃어버린다”(外篇/繕性)라면서 자신의 성정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한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 중허(中虛)의 도

<장자>는 동양 고전 중에 가장 재미있고 한번 빠져들면 마법에 걸린 듯 계속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마도 인간 세상을 풍자하거나 번뜩이는 지혜를 깨닫게 해주는 우화로 되어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삶의 이치와 지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자>는 내편이 장자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외편과 잡편은 후세에 가필되었다고 전해지고 있고 유학을 신랄하고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초독자라면 다소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내편보다 구체적이고 쉽고 재미있는 내용들로 가독성이 뛰어난 외편과 잡편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불교와 비슷하게 <장자>도 결국은 고통의 해소와 절대 자유는 우리 마음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즉 잡념의 소멸(좌망), 마음의 비움(심재)을 통한 득도의 상태(지인, 至人)를 추구한다. 이것은 결국 내적 수양과 연결되며 머릿속으로 이해되는 문제가 아니라 삶에서 실천의 문제로 귀결된다. “선행을 하더라도 명성이 나오도록 해서는 안 되고, 악행을 하더라도 형벌을 받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허(中虛)의 도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제 몸을 보전하여 생명을 온전히 할 수 있고 제 몸을 잘 길러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양생주 편에 나오는 이 말속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 연말에 잇따라 터진 계엄령 참극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우리에게 큰 충격과 분노, 슬픔을 가져왔다. 한강 작가의 말대로 “세상은 왜 이토록 잔인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가”라는 말이 여전히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고전 중에 가장 흥미롭다는 <장자>를 통해서 고통을 극복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해규 인문학협동조합 망원경 회원 남목고 교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