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관왕을 수상한 영화 ‘아노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스카의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그리고 여우주연상까지 휩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영화 ‘아노라’가 흥행 성적도 좋지 못한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5만 명의 관객밖에 동원하지 못했던 제목조차 생소한 작품이다. 영화 ‘아노라’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뉴욕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본명이 아노라(마이키 매디슨 분)인 애니는 어느 날 러시아 재벌 2세인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 분)을 손님으로 맞게 된다. 아노라가 마음에 들었던 이반은 그녀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일주일 동안 섹스파트너로 지내면서 서로는 가까워진다. 리무진을 타고 라스베이거스까지 가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던 이반은 러시아로 돌아가기 싫다며 즉흥적으로 아노라와 결혼한다. 한편 아들이 매춘부와 결혼을 하고 방탕하게 놀러다닌다는 것이 알게 된 이반의 부모는 하수인을 시켜 이들을 이혼시키려 한다.
영화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경제적 양극화의 현실을 통렬히 비판한다. 러시아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에 유학와 흥청망청 돈을 쓰며 유흥을 즐기는 이반과 뉴욕에서 가난한 성 노동자로 일하면서 동생을 부양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아노라의 삶을 대비시킨다.영화는 현대사회의 계층 갈등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 ‘기생충’과 닮아있다. 부유한 계층과 빈곤한 계층 간의 격차를 대비시켜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을 받은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두 영화 모두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코미디 장르를 채용해 재미난 전개로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불평등한 우리 사회를 반영하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넘을 수 없는 신분상승의 벽을 말한다. 신분상승을 꾀한다는 점에서 영화 ‘아노라’는 1990년 작품 ‘귀여운 여인’과 비슷하다. 그러나 현대판 ‘귀여운 여인’과는 전혀 다르다. ‘귀여운 여인’에서는 남녀주인공 모두 미국인이지만, ‘아노라’에서는 남자는 러시아인이며 여자는 우즈베키스탄계 이민자다. 또한 ‘귀여운 여인’에서 에드워드(리차드 기어 분)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젠틀맨이지만, 이반은 지하 세계에서 부를 축적한 러시아 재벌 2세의 철부지 아들이다. 1990년대 그때는 비록 판타지일지언정 신분상승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2025년 현재는 불가능하다. 아노라가 이혼에 승복한 후 하수인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우는 엔딩 장면은 신분상승의 꿈이 깨지는 것에 대한 실망과 넘을 수 없는 신분상승의 벽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재미있는 구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는 ‘플로리다 프로젝트’ ‘탠저린’ ‘레드로켓’ 등 비극을 희극으로 풀어내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주로 현대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각하지도 못한 메시지와 울림을 준다. 이번 작품에서도 초반부에서는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해 액션 장르를 방불케하는 중반부를 지나 마지막에는 씁쓸한 결말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조명하는 버라이어티한 구성으로 쉴새 없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소득과 부의 양극화 심화는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계층간의 이동 사다리 또한 붕괴되면서 신분상승의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양극화는 자본주의 모순을 부각시켜서 큰 정부에 대한 수요를 늘어나게 한다는 점에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아노라’는 양극화 문제가 특정 사회, 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임을 상기시켜주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