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경제, 특히 내수의 진작에 있어서 금리 인하 등의 금융 정책은 ‘줄’로 미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튼튼한 ‘막대기’가 있는데 왜 ‘줄’로만 미나? 정부가 내수가 살아날 것에 의지하고 있다면, ‘줄’로 밀지 말고 ‘막대기’를 써라
막대기로는 밀 수 있고 줄로는 당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하여 줄로 밀고 막대기로 당긴다는 것은 헛수고 이전에 아예 어불성설이다. 경제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과열되고 물가상승률이 치솟을 때는 금리를 올리는 것이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이는 줄로 당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물가상승률도 높지 않고 경기가 침체하는 상황에서 반대로 금리를 내린다고 해봐야 효과를 낼 수 없으며, ‘줄로 미는(push with string)’ 짓에 비유할 수 있다. 경기 침체 상황에서 금융 완화 정책의 무용성을 지적하는 이 표현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문헌에 분명히 등장하는 것은 1935년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이다. 이 해묵은 표현을 지금 다시 꺼내드는 것은 2024년 한국 경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보면서 나오는 한숨 때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의 상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내수의 침체라는 것은 분명하다.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며 경상수지 흑자를 내왔지만, 내수가 침체하면서 서민들, 특히 중소상공인들의 삶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코로나 사태 때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도처에서 들리는 것이 이해가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에 따르면, 민간 소비는 2023년 3분기 이후 겨우 1% 증가율에 머물고 있고, 소매 판매액의 증가율은 마이너스 3%이다. 투자 또한 2023년 이후 마이너스 증가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를 봐도 2023년 이후 내수는 계속 감소해왔다. 특히 국내의 실질노동소득이 정체를 보이고 있으니, 여기에 매출이 직접 좌우되는 중소상공인들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한때 6%를 넘나들며 사람들을 어렵게 만들었던 물가인상률은 지난 9월 1.6%로 떨어졌지만, 이것이 건강한 현상인지 아니면 내수의 극단적인 위축으로 인한 걱정스러운 추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경제성장률은 올해 2분기에 큰 폭으로 꺾이면서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연이어 금리를 인하한 것도 이러한 경기 침체의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 인하가 내수 진작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유가 전망, 국제정치 불안 등 세계 경제의 각종 불확실성 요소가 즐비한 가운데 특히 내수가 계속 위축되어 가는 상황이므로 이 정도의 금리 인하가 과연 설비투자를 자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투자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지만,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거대한 가계부채가 한국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으므로 설령 미국이 금리를 더 내린다고 해도 한국은행이 그러한 지속적인 금리 인하를 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 철 지난 신자유주의 교리 신봉
이 가계부채로 인해 금리 인하는 민간의 소비 진작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를 병행하는 적극적인 금융 완화 정책을 사용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가계부채가 워낙 컸으므로 이는 소비를 자극하는 효과를 낼 수가 없었고, 불확실성 요인이 워낙 커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화폐 유통속도(V)가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 한국 경제, 특히 중소상공인들을 비롯한 서민 경제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내수의 진작에 있어서 금리 인하 등의 금융 정책은 ‘줄로 미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절실한 것은 정부의 재정 지출을 통한 유효수요의 창출이다. 막대한 가계부채와 실질노동소득의 정체로 소비가 위축되고 여기에 다시 국내외의 불확실성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투자까지 위축되어 수요가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물가 상승과 경제 성장이 동시에 둔화되는 상황이라면, 그래서 이것이 다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악순환 고리가 나타나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효수요의 확장을 위해 과감한 정부의 재정 지출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재정 지출이라는 ‘막대기’로 밀어대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미 거의 100년 전에 케인스가 상식으로 만들어 놓은 바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2024년 한국 정부의 상식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여전히 ‘건전재정’을 외치면서 긴축 기조를 강화하고 있으며 확장적인 재정 지출과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어째서일까?
지난 반 세기 동안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설파해 온 교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정부의 재정 정책은 실물경제의 생산을 늘리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저 물가 인상만 가져올 뿐이며 중장기적으로는 조세 부담의 증대로 인해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할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부는 균형 재정을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해 그 절대적 크기 또한 가급적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를 할 수 있는 유일의 주체는 민간의 투자자들이다. 이들에게 투자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조세 감면, 특히 거액의 투자를 능동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은 (초)고소득층에 대한 집중적인 감세가 첩경이다. 따라서 설령 심각한 세수 감소로 재정 적자가 나타나 균형 재정의 원칙을 일시적으로 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경제에 확실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는 아주 화끈한 감세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한다. 요컨대 정부 지출은 ‘악’이며 민간 투자는 ‘선’이니, 오로지 감세 정책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은 이러한 교리를 아주 충실히 신봉하며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돈줄 계속 죄면 골목상가에 찬바람
이러한 경제학이 정말로 과학적인 경제학인가? 아니면 폴 크루그먼 등 많은 이들이 부르는 대로, ‘이미 몇번이나 현실에서 참담하게 실패했음에도 계속 목숨을 부지하고 어슬렁거리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의 두뇌를 먹어치우는 좀비 경제학’인가? 길고 지루한 경제학 논쟁을 단박에 불필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다. 지속적인 감세 정책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 증가율은 떨어지다 못해 작년 3분기 이후에는 아예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하향 조정된 2.2%도 제대로 채우기 힘들 것이며 내년에는 2%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화끈한 감세’로 올해 말까지 정부 재정은 90조원이 넘는 적자를 내게 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렇게 경제성장이 위축되면서 세수가 더욱 줄어들어 내년의 재정 상태 전망은 더욱더 어두워지는 악순환 고리만 생겨나고 말았다.
한국은행과 KDI는 내년 경제성장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상황이 나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수출도 호조를 보일 것이고 내수도 살아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경기선행지수들은 크게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소득 증가와 소비 심리의 회복을 들고 있지만, 현재 추세로 볼 때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질 것인지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결국 물가상승률이 꺾이고 미국이 금리 완화 기조로 돌아서면서 우리도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 하나 정도가 남지만, 이는 앞에서 말한 대로 ‘줄로 미는’ 격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다.
멀쩡하고 튼튼한 ‘막대기’가 있는데 왜 ‘줄’로만 밀어대야 하는가? 아직도 대한민국은 부채 비율이 건전한 나라에 들어간다.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0%가 넘지 않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 최근 부채의 증가 속도가 빠르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앞에서 말한 대로 효과가 심히 의심스러운 감세 정책 때문이다. 반면 정부 지출은 한국 경제 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훨씬 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중요한 정부 부문이 돈줄을 꽁꽁 죄고 있는 상태라면, 길거리 골목의 상가에 찬바람이 불지 않을 수가 없다. 길거리를 지날 때 유독 눈에 밟히는 상가의 공실과 ‘임대’를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내수 위축에 버티다 못해 무너지게 될 많은 이들을 위해 사회가 사후적으로 떠안아야 할 비용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정부가 정말로 ‘내년 이후에 우리 경제의 내수가 살아날 것’에 의지하고 있다면, ‘줄’로 밀지 말고 ‘막대기’를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