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암자로 가는 길’
- 정세훈 시인
없는 듯 있는 듯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가는 길을,
무성한 잡초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접동새 둥지로 내어주기도 했다가
잔 돌부리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절벽 위 노송 뿌리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이끼 낀 넓적바위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낙엽 뜬 계곡물에 내어주기도 했다가
허다한 날들을
아련하게
까마득히
스미고 번져갔을 어느 발길
천상에 닿을 듯 내려
쌓이는 눈발에게
그 모든 길을 내어주고 있다
생의 자락에서
단 한 번도 떠나보내지 못한
인연을
소복소복 묻고 있다
<해설>
겨울 암자 가는 길이 마치 하늘로 가는 길처럼 평화롭습니다.
암자로 가는 길이 “없는 듯 있는 듯/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아득하게 이어졌습니다. 이 길에 눈이 소복소복 내려서 “허다한 날들을/ 아련하게/ 까마득히/ 스미고 번져갔을 어느 발길”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덮습니다. 마침내 길은 하늘에 닿을 듯 꿈결처럼 놓였습니다.
계절의 길목입니다. 세상의 번다한 인연을 다 내려놓고 어느 한적한 암자에 스며들고 싶습니다. 굳이 눈이 오지 않더라도요.

강민숙 <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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