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강국은 그냥 오지 않는다

2025-06-24

영화, 드라마, K팝 곳곳에서 위기 신호 감지

콘텐츠의 근본은 창작, 지원 강화해야

김구 선생의 '높은 문화의 힘'은 그냥 오지 않아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하면서 '2030년까지 시장 규모 300조 원, 문화 수출 50조 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면서 문화 강국을 강조했다. "문화가 곧 경제이고, 문화가 국제 경쟁력이다. 한국 문화의 국제적 열풍을 문화 산업 발전과 좋은 일자리로 연결시켜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을 더 크게 키우겠다. 적극적인 문화 예술 지원으로 콘텐츠의 세계 표준을 다시 쓸 문화 강국, 글로벌 소프트 파워 5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그에 걸맞는 투자도 예상된다.

K팝부터 K드라마, K무비, K뷰티, K푸드, K문학, K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분야 눈부신 성장을 거두지 않은 장르가 없다. 이대로만 간다면 전 세계를 K컬처로 뒤덮을 기세다. 이대로 풍년가를 울리면 될 것 같은 기세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들어 문화계 각 분야에서 진행되는 위험 신호는 문화를 국가 경쟁력으로 삼으려는 새 정부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해 출판계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효과가 없었다면 '폭망'했을 것이다. 한강 소설을 출간했던 몇몇 출판사만 나름 선전했을 뿐 나머지 출판사들은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계는 어떤가. 최근 몇 년간 영화계, 특히 극장가는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OTT 플랫폼의 성장과 더불어 관람객 감소, 극장 매출 하락, 제작 편수 감소 등 다양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개봉관에는 굵직한 한국 영화가 거의 실종됐다. 매년 어려움 속에서도 천만 영화가 등장했지만 요즘엔 백만 영화를 찾기도 힘든 실정이다. 어느 분야보다 고급 인력이 유입된 영화계지만 모두들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쿠팡 배달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드라마와 예능 제작업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점령한 시장에서 드라마와 예능 제작 시장은 갈수록 뒤틀리고 있다. 넷플릭스 중심의 편성 구조에 맞추다 보니 드라마는 갈수록 제작비가 상승하고, 내용 역시 상업성을 앞세운 작품들만 살아남는 구조가 됐다. 예능 시장도 스타 위주의 제작 시스템 때문에 제작비가 상승하고, 내용도 정체성을 잃은 채 재미만 강조하는 추세다.

문화 강국의 중심 축인 K팝은 여기저기서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BTS와 블랙핑크로 정점을 찍은 K팝 업계가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뒤를 이어야 할 피프티피프티나 뉴진스 등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서 K팝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역동성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할 K팝이 벌써부터 폭죽을 쏘아 놓고 안주하는 느낌이다.

최근 뉴욕타임즈도 "한국 문화가 세계의 주류로 안착했다고 생각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의 문화적 힘이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이 국제적 영향력에 도달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보도했다. 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이나 한국의 문화를 금지하는 북한 등 지정학적 장애물이 존재하는 데다 한국의 문화 수출은 일부 분야에 국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에서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 정책의 대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지원의 방법론에 있어서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 기초 예술에 투자하고, K팝 공연 인프라를 구축하고, 영화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앞뒤 안 가리고 지원해 놓고 성과를 기다리기보다는 효과적인 지원을 통해 성공으로 가는 길을 터줘야 한다.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하되 법과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룡처럼 커지고 있는 OTT 시장과 스트리밍 시장은 정교하게 정비해야 한다. 또 AI가 눈부시게 발전해도 콘텐츠의 핵심은 창작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창작자들 중에 먹고사니즘을 극복하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창작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창작자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할 지원 정책이다.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좀 더 치밀하게 논의되는 문화계를 기대해 본다.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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