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결정을 배임죄로 과도하게 처벌”...상법개정 속도 내는 이복현

2024-06-14

김태성 기자(kts@mk.co.kr), 이승윤 기자(seungyoon@mk.co.kr)

독일, 배임죄 없이 사기죄 처벌

미국도 개인간 손해배상 처리

李 “경영진이 의무 다했다면

손해 끼쳐도 처벌 안받아야”

“배임죄 재판 1심·2심서

유·무죄 엇갈리는 경우 많아”

법조계도 “개편 필요” 목소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주요 정부 관계자 중 처음으로 배임죄 폐지를 주장한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할 정도로 배임죄 강도가 가장 센 한국의 현실이 정상적인 기업 경영까지 위축시키고 있다는 문제인식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형법상 일반·업무상 배임에 회사법상 특별배임 규정뿐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죄 규정까지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 형법 355조2항에 배임, 356조에서 업무상 배임을 규정한다.

355조2항은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할 때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이득을 취득하게 만들어 손해를 끼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356조는 업무상 배임 죄를 저지르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와 별도로 상법 622조의 특별배임죄로는 이사 등이 배임으로 회사에 손해를 가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특히 업무상 배임죄에 가중 규정되는 특경법은 위반 액수가 50억원 이상일 경우 살인죄와 똑같은 형량인 5년 이상 최대 무기징역을 적용한다.

주요 선진국과도 완전히 동떨어진 처벌이다. 독일은 아예 형법상 업무상배임죄나 상법상 특별배임죄 자체가 없다. 미국도 굳이 배임죄를 법에 명문화하지 않고 사기죄로 처벌하거나 개인간 손해배상으로 관련 이슈를 해결한다.

여기에 배임의 기준이 불명확하다보니 재계에서는 예전부터 배임죄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지적해 왔다.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의 범위가 워낙 넓고, 손해의 범위도 넓어 구형과 선고 과정에서 ‘고무줄’ 논란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유상증자나 인수합병 과정에서 경영진은 늘 배임 혐의를 받고있다. 실제로 ▲회사가 자금을 차입·대여하거나 계열사나 관계회사를 지원하는 경우 ▲신규 투자를 하는 경우나 다른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거래를 하는 경우 ▲회사 자금을 사용하는 경우 등 경영상 행위가 모두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같은 배임죄로 인한 형사처벌 우려 때문에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 역시 한국 사업이 위축될 정도의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기업가치 제고를 통한 자본시장 선진화를 이끌 의무가 있는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이 원장은 과감하게 배임제 폐지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이 원장은 “경영진의 판단이 형사 법정이 아닌 보드룸(이사회)에서 균형감을 갖고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며 “만약 다툼이 있다면 민사법정에서 금전적 보상으로 주주 등 사이에 정리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대한 재계의 강한 반발을 배임죄 폐지라는 당근을 제공해 불식시키려는 의도도 있어보인다.

실제 이날 이 원장은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까지 확대돼야 된다”면서도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가 균형 있게 고려됨으로써 서로 윈윈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취지이지 지배주주의 긍정적인 역할을 폄하하거나 불리한 부담을 주자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모든 경영활동에 주주충실 의무가 적용되면 기업경영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 원장은 “실제 경영판단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일 것”이라며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실제 배임제 폐지 추진이 쉽지 않을 전망인 만큼, 이 원장은 전면 폐지를 포함해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다양한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했다. 이 원장은 “형법상 배임죄를 포함해 배임죄를 다 폐지하는 방안 내지는 구속요건을 바꾸는 방안, 회사법상 특별배임죄를 폐지하는 방안, 배임죄 폐지 없이 경영판단원칙 의무를 다양하게 하거나 예측 가능하게 하는 방안 등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이중 경영판단원칙은 회사 이사나 임원들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하고 권한 내에서 행위를 했다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회사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말한다.

이 원장은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제3자 전문가의 의견을 구한다든가 통상 이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음에도 일부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주식매수 청구권을 주는 등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내용이 경영판단원칙으로 잘 구성이 됐다면 (경영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수준의 정상적인 경영 판단에 대해서는 민사 뿐 아니라 형사 책임까지 면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배임죄는 구성요건이 모호해 법원도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서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봐야된다고 인식돼 왔고 무죄율이 보통 범죄보다 4배 정도 높을 정도로 판사들에게도 어려운 죄”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해외에서는 배임죄가 있어도 실제 처벌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한국은 배임죄 고발이 남용되고 너무 과도하게 운영돼 온 측면이 있는만큼 폐지도 대안으로 고려해볼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원장은 이날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기업에 대한 여러 인센티브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법인세 세액공제, 배당소득 분리과세 및 최대 주주에 대한 할증폐지, 기업 상속공제 확대 등은 강하게 필요하다는 의견”이라며 “과거 유럽처럼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기업의 활력을 꺾고 해외로의 자본 유출을 초래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본시장 선진화와 연결된 세제 개혁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둘러싸고 각 진영에서 제기 하는 주요 제도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이 원장은 “집중투표제 강화, 황금 낙하산 제도 등은 현실적으로 다소 의문이 든다”며 “특정 주주의 의결권을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배임죄 폐지 등) 그런 방식으로 이사회가 균형감있게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제도 논의 과정에서 합의 도출 가능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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