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AI 버블, 꺼져도 꺾이지 않기를

2025-09-14

2022년 말 챗GPT가 등장한 후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갔다.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은 AI의 잠재력이 너무 크니 규제를 미리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구글은 뒤처졌다는 이유로 주가가 흔들렸다. 오픈AI 내부에서는 안전성 논란으로 갈등이 일었고 일부 연구자들이 독립해 앤스로픽을 세웠다. 중국에서는 딥시크가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약 속에서도 성과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기술 발전도 업계의 드라마도 숨 가쁘게 이어졌다. AI가 대부분의 인지 기능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날이 2~5년 안에 온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10년 안에 많은 의사와 교사가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AI 때문에 배움의 기회마저 줄어든다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정작 일상에서의 체감은 조금 달랐다. 연구자로서 사용해 본 AI는 글쓰기와 데이터 분석에서 혁신적이었지만 운전 중 쓰는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는 원하는 팟캐스트를 틀어달라는 요청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다. 아마존의 음성 비서인 알렉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대로 하는 것이 알람 맞추기와 날씨 알려주기뿐이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릴 것만 같은 화려한 기술 서사와 일상 속 불만족스러운 경험 사이의 괴리감은 커져갔다.

이러한 괴리감이 단지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니었던 걸까.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AI 열풍에 불을 지폈던 올트먼 스스로가 “투자자들이 과하게 흥분해 있다”며 한발 물러섰고 에릭 슈밋 전 구글 CEO는 “실리콘밸리가 모델 성능 경쟁에만 과하게 매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며 한때 2조 원까지 가치 평가를 받았던 ‘Builder.ai’는 기술과 실적 모두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이 들통나 6월 파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4일 자로 AI가 이전 기술과 별다를 것 없는 그냥 평범한 기술 중에 하나일 수 있다는 기사를 실었는데 그 이후 연속적으로 여러 기사에서 ‘AI 버블’의 가능성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닷컴 버블이 그랬듯이 지금의 과열된 분위기가 식고 냉철한 평가가 이뤄지는 ‘조정의 시간’이 곧 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는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걸린 정책적 질문이다. 최근 정부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중 30조 원을 AI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래를 위한 담대한 결정이지만 만약 AI 버블이 터진다면 이 거대한 투자는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일부 투자 기업이 문을 닫는다면 정책 실패라는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닷컴버블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 수많은 정보기술(IT) 기업이 거품처럼 사라졌지만 그 속에서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엔비디아 같은 기업들이 살아남았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벤처기업이 쓰러졌지만 김대중 정부는 거센 비판 속에서도 IT 인프라와 벤처 생태계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그 뚝심 있는 정책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기술 버블은 금융발 위기와 달리 거품이 꺼진 자리에도 핵심 기술이 남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닷컴 버블 이후에 옥석이 가려지며 제대로된 인터넷 인프라와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었고 그 단단한 기반 위에서 지금의 AI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AI 기술의 조정기가 오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더라도 정부는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인 시각으로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그럴 때일수록 정부는 시장에 안정된 신호를 줘야 하고 AI 버블이 지나고 맞이할 진짜 제대로 된 AI 시대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조정의 시기가 와도 살아남을 기술과 인재, 실체 있는 기업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가 와도 실력 있는 기업과 연구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이들을 믿고 지원한다면 우리나라는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오히려 AI 시대를 선도하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AI 버블은 아직 오지 않았고 기우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힘든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정책의 방향을 꺾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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