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다룬 책 많은데 ‘먼저 온 미래’ 왜 화제?

2025-09-14

[주간경향]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은 기술 진보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넘어 인간의 질서와 위상을 되묻게 한 사건이었다. 장강명 작가의 논픽션 <먼저 온 미래>는 그 충격 이후 8년, 인공지능(AI)이 한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재편했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취재 대상은 전·현직 프로기사 29명과 관련 전문가 6인.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이뤄진 인터뷰를 통해 AI 도입이 바둑계에 남긴 구조적 변화를 따라간다.

작가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국 이후의 충격을 포석의 변화부터 입단 제도의 수정, 관전 문화의 쇠퇴, 프로기사 위상의 하락 등 바둑 생태계 전반에서 ‘인간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추상적인 예측이 아니라 특정 커뮤니티의 붕괴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양상을 심층 인터뷰와 현장 중심으로 그려낸다.

<먼저 온 미래>는 지난 6월 출간 이후 두 달 만에 8쇄를 돌파했고, 누적 판매 2만5000부를 기록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 기준 9월 4~10일 ‘미래예측’ 분야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를 제쳤다. 기술적 특이점·초지능을 다루는 기존 AI 전망서들과 달리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서사적 감각을 제공한 점이 독자 반응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책은 출판계를 넘어 바둑계에도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8월 신한은행의 ‘세계 기선전’ 출범식에서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이 책을 언급하며 “바둑과 경영의 통찰을 얻으면서 이번 대회 후원을 결심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AI가 특정 업종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바둑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는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하는” 상황을 전망한다. 이 과정은 작가의 직업인 문학계를 비롯해 다양한 직업군에 적용 가능한 변화 양상으로 제시된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는 “AI에 대한 기존 논의가 선험적 예측에 머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실제 현장을 깊이 취재해 AI가 커뮤니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며 “경험 기반의 흥미로운 사례 연구”라고 평가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SF처럼 비약적이지 않으면서 현실적 기술 수준에 기반해 미래를 그려내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한 점이 시의적절하다”라고 말했다.

현실에 기반한 서술은 독자들의 막연한 불안을 알파고 사건의 맥락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리서치가 2024년 8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AI가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은 50%, 판단을 유보한 비율은 46%였다. 같은 기관의 2023년 11월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78%가 ‘AI가 내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답했다. 기술에 대한 인식은 이미 일상의 불안으로 확산해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많은 사람이 AI에 대해 막연한 불안을 느끼지만, 대체로는 통계 중심으로 특정 직업군의 소멸 가능성만을 나열한다”며 “이 책은 그러한 막연함을 넘어서 AI가 개인의 삶과 어떤 접점을 맺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책은 단순히 일자리 상실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기반까지 질문한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쓴다. “당신은 어쩌면 일자리를 잃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 다른 업계 사람들까지 인공지능의 등장 앞에서 안전과 일자리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설사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는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글항아리 이은혜 편집장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기보다는 주로 업무 능력 등 지적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환경에서 AI가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게 될 경우 인간은 존재감을 상실하기 쉽다. 계몽주의 이후 축적되어 온 인간의 지적 기반이 AI로 인해 흔들리면서 인간 존재의 근거 자체가 위협받는 구조를 책이 잘 드러냈다”고 말했다.

결말에 이르러 책은 기술 발전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한다. “만약 그렇다면 공상에 잠긴 어린아이들을 사상가나 비저너리라고 불러야 하며, 실리콘밸리의 자칭 사상가들은 내 눈에 바로 그런 어린아이들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이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믿지만, 세상의 문제가 뭔지 정의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실패한다”며 조속한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같은 비관적 전망에 대해 전문가들의 반론도 존재한다. 홍성욱 교수는 “체스는 AI 도입 이후 오히려 더 활성화됐다”며 바둑계의 사례가 곧장 모든 직업군으로 일반화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성우 응용언어학자 역시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국 이후 오히려 전 세계 프로기사 수는 소폭 증가했다”며 “알파고 제로 이후 인간 중에서 AI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없다. 그렇지만 프로기사들이 확 줄지 않았다는 점은 힘들어지긴 했어도 하나의 업계가 쉽게 축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이어 “책이 ‘기사’와 ‘소설가’라는 직업적인 관점에 집중돼 있다”고도 말했다. 바둑이나 문학은 아마추어적 영역도 존재하는 만큼 전업 관점만으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판단하는 점은 다소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평가다.

결말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함께 책은 AI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린 구체적 현장을 토대로 각자의 전망을 생각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장은수 대표는 “AI 이후의 세계에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 대응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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