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임파서블' 99.99% 수율도 충족…SK하이닉스, HBM 초대박 이전에 '저전력 DDR' 신화

2025-02-09

SK하이닉스 본사인 경기 이천 캠퍼스의 반도체 공장 ‘M10’. 이곳은 20년 전인 2005년부터 가동된 8인치 웨이퍼 환산 기준 월 10만 장 규모의 생산 시설이다. M10은 비교적 최근 설립된 M14·M16 등 사업장 내 다른 공장보다 생산 규모와 설비 수준이 작고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이곳은 SK하이닉스의 모태이자 혼이 서려 있는 상징성을 지닌다.

2005년 하이닉스반도체 시절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부터 국내 시가총액 2위 기업으로 오르기까지 회사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건물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메모리 시장 내 게임의 법칙을 바꿨다.

하지만 지금의 영광이 있기 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작성한 또 하나의 역사가 있다. 2013년 ‘삼성을 추격할 수 없는 만년 2위’ 딱지를 떼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LPDDR3’ D램을 M10에서 생산하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야기다.

◇LPDDR의 시작, ‘다물(多勿)’ 프로젝트=LPDDR D램은 저전력 메모리다. PC나 서버에 쓰이는 DDR D램에 비해 전력 소모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폰·태블릿·노트북 PC 등에 쓰이는 대표적인 모바일 D램이다.

SK하이닉스는 2007년부터 LPDDR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점찍었다. 제품 개발은 2년 뒤 ‘다물 프로젝트’라는 작전명과 함께 본격화한다. 다물은 고구려 말기 “옛 영토와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쓰던 고구려 말이다. 고난을 이기고 SK하이닉스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임직원들의 비장한 각오가 담긴 프로젝트였다.

당시 회사 마케팅본부는 다물 프로젝트를 위해 모바일 D램 ‘별동대’를 꾸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LPDDR 시장을 연구하고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별동대에 전권을 줬다” 면서 “최고경영자(CEO)마저도 이 부서의 결정을 거스르기 힘들었을 만큼 기동력과 힘이 막강했다”고 술회했다. 극자외선(EUV)과 HBM 등에서 별도 조직을 운영하면서 특화 기술을 키운 방식이 이때 이미 시행된 셈이다.

SK하이닉스가 LPDDR 별동대를 만든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당시 D램 업계에서 키몬다·엘피다 등이 심각한 출혈을 불사하면서도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SK하이닉스에는 경쟁사를 물리치기 위한 신무기가 절실했다. 2007년 애플이 새로운 모바일 세상을 연 것도 중대 전환점을 맞게 했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로 스마트폰 시장에 참전했다. 2010년대 고용량 LPDDR D램의 시간도 함께 막이 올랐다.

미션: 1만 개 제품 중 불량 1개…일주일 밤새우며 대응=SK하이닉스 연구원들은 비장한 각오로 LPDDR 개발에 돌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거는 기대는 ‘제로(0)’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LPDDR 시장을 휘어잡고 있었던 기업은 일본 엘피다였다.

외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엘피다 이외 다른 D램 제조사가 공급망에 진입하는 것을 상당히 꺼렸다. 모바일 D램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회사의 제품을 썼다가 불량이 나오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며 의구심을 피력하기 일쑤였다. 공급망 진입에 극악한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일본의 한 휴대폰 제조사는 “1만 개 중 1개의 불량, 즉 99.99%의 수율을 만족해야 SK하이닉스의 LPDDR D램을 써줄 수 있다”고 통보했다.

‘미션 임파서블’과 다를 게 없는 요구였지만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은 회사 생존과 재무 건전성 회복을 위해 ‘헝그리 정신’으로 총력전을 폈다. M10 공장의 엔지니어들은 일주일 밤을 온전히 지새우면서 LPDDR 웨이퍼의 휨 현상을 확인하고 수율을 올렸다. 결국 까다로운 일본 고객사의 퀄 테스트를 통과하며 LPDDR2를 납품하기 시작한 SK하이닉스는 이 분야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2012년 하이닉스는 든든한 날개를 얻기도 했다.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의 반대에도 “하이닉스를 초우량 반도체 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그룹 역량과 개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겠다”며 뚝심 있게 회사의 혁신을 지원했다.

결국 SK하이닉스는 2013년, 다물 프로젝트 개시 4년 만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용량 8Gb LPDDR3를 개발해 세계 최대 스마트폰 업체의 선택을 받았다. 같은 해 LPDDR4 개발은 물론 최근에는 LPDDR5T와 24GB 용량의 5X 양산까지 ‘세계 최초’ 타이틀을 잇따라 거머쥐면서 LPDDR 최강자 자리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HBM에서 일대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기적 같은 LPDDR 개발의 유산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한 반도체 업계 핵심 관계자는 “기민한 조직의 대응과 고객사 요구를 어떻게든 만족시키려는 임직원들의 절실함이 SK하이닉스의 오늘을 있게 한 DNA”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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