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Jeep)는 ‘오프로드 명차’로 유명한 브랜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 기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처음 개발된 뒤, 전장에서 활약하며 기본기를 다져왔다. 지프는 국내에서도 군용 차량 이미지가 강했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모두 ‘짚차’(지프 차)라고 통칭할 정도였다.
‘그랜드 체로키’는 지프의 라인업 중 최상위(플래그십) 럭셔리 모델이다. 1993년 미국에 처음 출시된 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파워풀한 성능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한때 연간 20만 대 이상 팔리며, 스텔란티스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프·푸조·피아트·크라이슬러 등 쟁쟁한 브랜드를 보유한 다국적 자동차 제조업체 스텔란티스는 최근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전동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다. 중국 전기차들에게 중국과 유럽 시장을 빼앗겼고,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도 수요가 줄었다. 일부 공장을 폐쇄하고, 카를로스 타바레스 최고경영자(CEO)의 퇴진 예고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프가 내놓은 친환경차 중 하나가 ‘그랜드 체로키 4xe’다. 기존 그랜드 체로키에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파워트레인을 얹었다. “PHEV로 라인업을 확대하면서도, 지프의 유산을 이어갈 전략”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 차를 타고 지난 10일 서울~강원도 홍천 등 왕복 200㎞ 거리를 주행해봤다.
준대형 SUV이지만 외관은 ‘그랜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대했다. 4900㎜의 전장(앞뒤 길이) 경쟁 모델인 현대차 제네시스 GV80(4940㎜)보다 약간 짧지만, 좌우 너비인 전폭(그랜드 체로키 1980㎜, GV80 1975㎜)은 미세하게 넓다. 대신 그랜드 체로키의 전고(높이)가 1790㎜로, GV80(1715㎜)보다 75㎜ 더 높아서인지 실내 공간이 상대적으로 더 넓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실내엔 확장형 글라스가 적용돼 개방감이 돋보였다.
실내 좌석도 넉넉했다. 2열 레그룸도 넓어 키 180㎝ 넘는 성인 남성이 앉아서 다리를 살짝 펴거나 움직일수 있었다. 트렁크는 골프백 4개와 보스턴백 4개가 꽉 들어맞게 실릴 정도다. ‘차박‘(차량숙박) 이나 캠핑 등에서 활용도가 높아 보였다.
콕핏의 각종 버튼이 10.25인치 센터 디스플레이 위 아래로 분산 배치돼 있었는데, 적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도어 내부와 대시보드 등엔 ‘우드 스타일’ 패널이 적용됐는데,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듯 했지만 한편으론 올드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차량의 가속페달을 밟자 ‘울컥 드르르륵’ 소리가 먼저 귀에 꽃혔다. 시내 도로에서 저속주행을 하며 전기↔내연기관 전환이 반복되자 꿀렁임과 덜컹거림이 지속해서 느껴졌다. 스텔란티스코리아 관계자는 “PHEV 특성상 울컥거림이 발생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주말차담 코너에서 소개했던 기아(쏘렌토·K8), 혼다(어코드) 하이브리드 모델은 전기차를 운행한다는 느낌이 컸다. 스텔란티스가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아직 안정화 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강원도의 구불구불한 산길과 비포장 흙길을 주행할 때는 오히려 덜컹거림 없이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발휘했다. ‘오프로드에 강한 차’라는 평가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첨단 주행 안전편의 사양이 탑재됐지만, 국내 도로에선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스톱&고, 보행자 감지 긴급 브레이킹 시스템, 풀 스피드 전방 충돌 경고 플러스 시스템 등이 적용됐다. 하지만 정작 ‘차선 감지’ 같은 기본적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활성화해도 차량이 계속 한쪽으로 쏠리는 탓에 결국 그 기능을 끄고 직접 조향해야 했다.
주행 중 각종 센서가 갑자기 경고음을 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을 때가 많아 오히려 운전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 서초구의 8차선 도로를 달리던 중엔 “사슴이 나타났다”는 알람이 표시되며 차량이 급제동하기도 했다. 전방 동물·사람 감지 기능이 작동된 탓이다. 전방에 사슴이나 사람은 없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이 차의 출고가는 트림별로 9440만~1억1190만원이다
최근 완성차업계는 전동화와 자율주행의 속도를 맞추는 추세다. 통상 전기 신호를 물리 신호로 바꿔 자율주행 기능을 구현하는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신호만 오가는 전기차에서 자율주행도 더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행보조기능이 아직 불완전하게 작동하는 건 ‘전동화 지각’ 때문 아닐까. 스텔란티스가 풀어야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