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큰딸과 눈 내린 서울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가게 앞 가로수 은행나무는 아직 노란 잎을 매달고 있었다. 은행나무를 보며 큰애가 저 잎이 다 얼면 어쩌냐고 걱정하기에 안심을 시켰다. 잎이 떨어지지만 않았을 뿐, 이미 엽록소와 수분까지 다 빼버렸기에 더 이상 얼 수 없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대표적인 낙엽수로 잎을 다 떨구고 월동에 들어가는 식물이다. 반면 크리스마스 트리로 대표적인 나무인 구상나무나 전나무는 여전히 잎을 달고 겨울을 난다. 과학 용어로 ‘코니퍼(cornifer)’라고 분류하는 이 나무들의 겨울나기는 좀 다르다. 잎을 가능한 길쭉하고 가늘게 만들고, 그대로 매단 채 겨울을 난다.
이 상록수가 잎을 떨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연중 내내 나이든 잎은 떨어지고 새잎이 다시 나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이 나무들이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된 이유는 그 푸르름 때문이지만, 독특한 수목의 형태도 큰 몫을 한다. 뾰족한 삼각형의 형태는 눈이 내렸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경사를 만든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상록수일수록 이 경사 각도가 더욱 가팔라진다. 이 상록수는 특유의 찐득한 성분의 수액을 줄기와 가지에서 만들어낸다. 수액으로 코팅된 잎에 눈이 닿으면 떨어지지 않는데 이 눈을 이불 삼아 추위를 이겨내는 용도로도 쓴다.
지구의 역사에서 보면 코니퍼가 3억년 전에 출현했고, 큰 잎을 지닌 낙엽수의 등장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낙엽수의 등장은 비교적 지구 환경이 사계절이 뚜렷해진 시점이다. 코니퍼는 몇 번이나 일어났던 지구의 빙하기도 견디고 살아남은 가장 막강한 생명체 중 하나다. 지구에 순응하지 않고 해를 끼치는 생명체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은행잎이 떨어지기도 전 찾아온 눈처럼 지구는 무엇인가를 자꾸 말해준다.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은 무엇일지, 맘이 조급해진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