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헌의 시와 그림] 김치는 착하다

2024-12-11

대전 미소가있는치과Ⓡ 송선헌 대표원장

‘담근 채소’인 침채(沈菜)가 김치로... 그 김치는 혈연처럼 찐하고 자식들처럼 색이 뚜렷하기 운명이다.

약이 안 되는 음식이 없고 김치 안 되는 음식은 없듯이 그런 김치는 매일 만나도 손이 가는, 꼭 챙기는 비타민처럼 없으면 허전한, 해외여행 사흘이 지나면 슬슬 생각나는, 세로토닌처럼 심신을 안정시키는, 3-5-7-9-12첩 반상인 수라상에도 꼭 참여하는, 신기한 것은 친구처럼 오래될수록 그 맛이 오묘해지는, 집-고장마다 성(性)씨처럼 종류와 맛이 다 다른, MSG처럼 모든 음식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나는 묵은지가 더 좋고 줄기도 좋지만 속이 더 좋은, 피자에도 김치를 올려 먹는 완전한 토종파다.

김치는 착한데, 참조기를 넣은 ‘반찬등속’의 귀한 김치는 아닐지라도 “김치 담글 때는 돈 아끼는 거 아녀!”, 우리 집은 TV 한국인의 밥상에서 배워 생갈치를 갈아 넣어 아삭아삭함과 감칠맛을 끌어 올리는데 김장을 담그는 날이면 군침이 팍팍 도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란 진정한 맛을 기대하기 때문, 그런 김치는 새콤함이 솟구치는, 아삭아삭함이 싱그러운, 톡톡 터지는 시원함이, 알싸한 매콤함이 선한 중독을 일으킨다.

김치는 사연들을 품고 익어가지만... 홀트(Harry Holt, 1905~1964)가 만든 복지회를 통해 스웨덴 노르쉐핑으로 입양(1955) 갔던 수잔 브링크, 그녀가 아이를 낳고 아리랑을 부르며 찾던 부모 그리고 양배추에 고춧가루만 뿌려 먹던 눈물의 김치... 그녀는 46살로 생을 마감... 생모를 찾던 슬픈 김치도 있었다.

고추는 아메리카 대륙-포르투칼 상인-동아시아-임란-조선으로 왔는데, 김치의 고춧가루는 경신대기근(1670~1671)으로 소금이 귀해 대용으로 고춧가루와 젓갈을 사용한 게 유래, 지금의 배추는 민비 살해의 을미사변(1895)에 가담, 일본으로 망명 후 암살당한(1903) 우범선의 아들, 수원 여기산(麗岐山)에 묻힌 우장춘 박사가 개량했다.

발효로 작은 기포가 올라오면 ‘김치가 미쳤다’고 말하는데 이 유산균(乳酸菌)은 약 90% 이상이 위산 속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히말라야 올라가다가 들른 네팔의 산악 오지마을에서도 절인 배추를 먹어 놀랐다. 기무치(キムチ)에는 자연스럽게 감정이 들어가고, 중아아시아의 고려인의 당근 김치인 마르코피 포-코레이스키는 슬프고, 독일 사우어크라프트는 동질감을, 튀르키예에의 ‘투루슈’는 백김치와 비슷해서 놀란다.

나의 최애는 개성 보쌈김치인데 아쉽게도 한정식 집에서만 만나고, 총각이 아닌 나도 총각김치를 좋아하고, 겉절이는 늘 친구 같고, 백김치는 깔끔하고, 갓김치는 거칠지만 강하고, 서산 게국지는 쿵쿵하고, 고들빼기김치는 쌉싸름하고, 강화도의 고수김치는 익숙하지 않고... 전라도 김치는 응어리를 풀어주고...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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